〈어느 섬의 가능성〉
현대인들 숙명 같은 ‘존재의 고통’을
중년 남성· 20대 여성 사랑과 좌절로 표출
욕망 제거된 미래인류 교차해 의미 탐색
중년 남성· 20대 여성 사랑과 좌절로 표출
욕망 제거된 미래인류 교차해 의미 탐색
<어느 섬의 가능성>
미셸 우엘벡 지음·이상해 옮김/열린책들·9800원 육체는 슬프다. 그것이 가능성의 주머니이자 불가능성의 푸댓자루이기 때문이다. 육체는 삶이라는 가능성이 깃드는 둥지이지만, 거기에는 예외 없이 쥐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 그곳으로 죽음이라는 불가능성이 새어 나온다. 육체는 삶을 양육하는 척하면서 죽음을 키운다. <투쟁 영역의 확장>과 <소립자>의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49)의 2005년작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은 삶과 죽음의 대립이라는 영원한 철학적 주제를 다룬다. 소설에서 삶과 죽음은 각각 젊음과 늙음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싸움에 임한다. 삶과 죽음, 혹은 젊음과 늙음의 싸움이란 보편적인 만큼 진부해질 위험성 역시 상존하는 주제. 우엘벡은 에스에프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으로 그 위험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소설은 21세기 초 현재를 사는 다니엘(1)의 이야기와, 지금으로부터 2천 년쯤 지난 뒤 복제인간인 ‘신인류’ 다니엘24와 다니엘25의 ‘논평’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주제에 대한 입체적 접근을 꾀한다. 성공한 작가 겸 희극배우 다니엘은 ‘존재의 고통’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존재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늙음과 죽음이 그 핵심이다. 다니엘이 겪는 존재의 고통은 구체적으로는 에스더라는 젊은 여성에 대한 사랑과 좌절로 표출된다. 마흔일곱의 ‘늙은이’ 다니엘과 스물둘의 젊은이 에스더의 사랑은 그것이 온전하게 진행 중일 때에도 파국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사랑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사랑과 섹스를 보는 세대 간의 견해 차이도 개입한다. 그가 사랑이라는 느낌의 공유에 집착하는 반면, “그 세대의 모든 젊은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에스더에게 섹스는 특별한 감정적 구속을 내포하지 않는, 오로지 유혹과 에로티시즘만이 문제되는 재미있는 오락거리에 불과했다.”(334쪽)
사실 다니엘의 태도에는 분열증적 면모가 없지 않다.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에스더와의 사랑 없는 섹스인지, 아니면 그런 섹스조차 미구에 불가능하게 만들 늙음과 죽음인지가 모호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하게 묘사된 대목들은 삶, 그러니까 섹스를 독점하려는 젊음에 대한 늙음 쪽의 앙심이 표출된 부분들이다.
“젊은이들의 몸, 세상이 생산해 낼 수 있었던 그 탐스러운 유일한 부는 오로지 젊은이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늙은이의 운명은 죽어라 일만 하는 것이었다. ‘세대 간 유대’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대체할 세대를 위해 저질러지는 각 세대의 순수하고 단순한 홀로코스트, 어떠한 위안도, 어떠한 격려도, 어떠한 물질적 정서적 보상도 따르지 않는 잔인하고 긴 홀로코스트였다.”(384쪽)
다니엘(1)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치명적인 문제였던 사랑 혹은 섹스는 신인류에게는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인간이 성적인 문제에 부여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중요성은 매번 신인류 논평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320쪽) 신인류는 모든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무관심과 평온을 얻었다. 불교가 수행으로 추구하는 것을 신인류는 과학으로써 획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된 것인가. 다니엘25가 인간적 욕망과 경험에 대한 향수 때문에 기약 없는 모험에 나서는 소설의 결말은 신인류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비록 짧은 행복과 기나긴 고통으로 점철된 영토일지라도 인간은 사랑이라는 ‘가능성의 섬’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열린책들 제공
미셸 우엘벡 지음·이상해 옮김/열린책들·9800원 육체는 슬프다. 그것이 가능성의 주머니이자 불가능성의 푸댓자루이기 때문이다. 육체는 삶이라는 가능성이 깃드는 둥지이지만, 거기에는 예외 없이 쥐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 그곳으로 죽음이라는 불가능성이 새어 나온다. 육체는 삶을 양육하는 척하면서 죽음을 키운다. <투쟁 영역의 확장>과 <소립자>의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49)의 2005년작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은 삶과 죽음의 대립이라는 영원한 철학적 주제를 다룬다. 소설에서 삶과 죽음은 각각 젊음과 늙음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싸움에 임한다. 삶과 죽음, 혹은 젊음과 늙음의 싸움이란 보편적인 만큼 진부해질 위험성 역시 상존하는 주제. 우엘벡은 에스에프적 장치를 동원하는 것으로 그 위험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소설은 21세기 초 현재를 사는 다니엘(1)의 이야기와, 지금으로부터 2천 년쯤 지난 뒤 복제인간인 ‘신인류’ 다니엘24와 다니엘25의 ‘논평’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주제에 대한 입체적 접근을 꾀한다. 성공한 작가 겸 희극배우 다니엘은 ‘존재의 고통’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존재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늙음과 죽음이 그 핵심이다. 다니엘이 겪는 존재의 고통은 구체적으로는 에스더라는 젊은 여성에 대한 사랑과 좌절로 표출된다. 마흔일곱의 ‘늙은이’ 다니엘과 스물둘의 젊은이 에스더의 사랑은 그것이 온전하게 진행 중일 때에도 파국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사랑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사랑과 섹스를 보는 세대 간의 견해 차이도 개입한다. 그가 사랑이라는 느낌의 공유에 집착하는 반면, “그 세대의 모든 젊은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에스더에게 섹스는 특별한 감정적 구속을 내포하지 않는, 오로지 유혹과 에로티시즘만이 문제되는 재미있는 오락거리에 불과했다.”(334쪽)
미셸 우엘벡
다니엘(1)에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치명적인 문제였던 사랑 혹은 섹스는 신인류에게는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인간이 성적인 문제에 부여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중요성은 매번 신인류 논평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320쪽) 신인류는 모든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무관심과 평온을 얻었다. 불교가 수행으로 추구하는 것을 신인류는 과학으로써 획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된 것인가. 다니엘25가 인간적 욕망과 경험에 대한 향수 때문에 기약 없는 모험에 나서는 소설의 결말은 신인류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비록 짧은 행복과 기나긴 고통으로 점철된 영토일지라도 인간은 사랑이라는 ‘가능성의 섬’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열린책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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