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트벵글러'
장정일의 책 속 이슈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하프너 지음·이기숙 옮김/마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두 개의 지구당에 동시에 입당한 나치 당원이었으며 나치 장교였다. 하지만 그때 그는 막 지휘자 경력을 쌓기 시작했던 애송이였다. 그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 실력 있는 망명 음악가들로 득시글거리는 외국에서 지휘자로 성공할 확률은 미지수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사정이 퍽 다르다.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눈독을 들인 당대의 거장으로 자유로운 외국 여행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망명을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치가 맡긴 공직에 있으면서 여러 종류의 위문 공연에 참여했던 행적으로 그는 전쟁이 끝나자 조사를 받았다. 잘못된 전기의 희생자들은 그가 무혐의를 선고받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 가담자’로 분류되어 있다. 나치의 통제 아래 정치적으로는 좌파, 인종적으로는 유대인, 음악적으로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활동이 금지되었고 생명마저 위태로웠다. 그러므로 ‘푸’씨가 나치 정권 아래서 ‘문화권력’으로 위세를 떨치게 된 데에는 세계적인 명성이나 실력만 아니라, 나치가 정한 어느 금기에도 저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이걸 망각하면 ‘푸르트벵글러 신화’가 된다.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최신 전기 <푸르트벵글러>(마티, 2007)는 나치의 정치적 수혜자이자 선전원 노릇을 하면서 정치와 예술의 분리 가능성과 예술의 순수성을 강변했던 게 푸르트벵글러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치 하에서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라는 예술지상주의를 신봉했던 사람이 비단 ‘푸’씨뿐이었을까? 뵘·슈리히트·요훔·크나퍼츠부슈 등 대다수 음악가들이 모두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슈리히트가 지휘한 부르크너 <교향곡 9번>을 처음 듣고 ‘먹었던’ 감동을 토해내야 할까?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술가들의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부역 판단은 어떤 기준을 필요로 하며, 그들의 작품을 정치적 과실과 별개로 취급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간단치 않은 문제로 우리를 괴롭힌다. 그뿐 아니라, 일본을 비난할 목적으로 한국인들이 독일의 역사 청산을 너무 완벽한 모델로 이상시하고 있다는 점도 직시하게 한다. 전후 독일 음악계의 경우 역사 청산은 거의 무풍지대였으며, 다른 분야의 사정도 오십보백보다.
음악 비즈니스계에서 벌어지는 거장들의 시기와 경쟁을 엿보는 재미는 이 책의 덤이다. 특히 푸르트벵글러 사후 전혀 스타일이 다른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지휘자로 낙점된 사연은 흥미롭다. 전후의 비참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독일 관객들은 ‘카’씨의 아름다운 음색과 피상적 해석을 반겼다. 게다가 푸르트벵글러의 주정주의적인 해석은 공연장에서는 괴력을 발휘하지만, 음반을 통해 낱낱이 흩어진 익명의 감상자를 얻는 데는 걸맞지 않았다. 카라얀을 통해 고전 음악의 미디어화와 세계화가 활짝 열렸지만, 독일 음악과 민족을 동일시했던 푸르트벵글러가 ‘카’씨를 병적으로 견제했던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
* 이번주부터 소설가 장정일씨가 '책 속 이슈'를 연재합니다.
헤르베르트 하프너 지음·이기숙 옮김/마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두 개의 지구당에 동시에 입당한 나치 당원이었으며 나치 장교였다. 하지만 그때 그는 막 지휘자 경력을 쌓기 시작했던 애송이였다. 그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 실력 있는 망명 음악가들로 득시글거리는 외국에서 지휘자로 성공할 확률은 미지수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사정이 퍽 다르다.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눈독을 들인 당대의 거장으로 자유로운 외국 여행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한 번도 망명을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치가 맡긴 공직에 있으면서 여러 종류의 위문 공연에 참여했던 행적으로 그는 전쟁이 끝나자 조사를 받았다. 잘못된 전기의 희생자들은 그가 무혐의를 선고받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 가담자’로 분류되어 있다. 나치의 통제 아래 정치적으로는 좌파, 인종적으로는 유대인, 음악적으로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활동이 금지되었고 생명마저 위태로웠다. 그러므로 ‘푸’씨가 나치 정권 아래서 ‘문화권력’으로 위세를 떨치게 된 데에는 세계적인 명성이나 실력만 아니라, 나치가 정한 어느 금기에도 저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이걸 망각하면 ‘푸르트벵글러 신화’가 된다.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최신 전기 <푸르트벵글러>(마티, 2007)는 나치의 정치적 수혜자이자 선전원 노릇을 하면서 정치와 예술의 분리 가능성과 예술의 순수성을 강변했던 게 푸르트벵글러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치 하에서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라는 예술지상주의를 신봉했던 사람이 비단 ‘푸’씨뿐이었을까? 뵘·슈리히트·요훔·크나퍼츠부슈 등 대다수 음악가들이 모두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슈리히트가 지휘한 부르크너 <교향곡 9번>을 처음 듣고 ‘먹었던’ 감동을 토해내야 할까?
소설가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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