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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바울로가 만든 기독교리는 유대교의 변형”

등록 2007-10-26 22:33수정 2007-10-28 13:42

박영호(73) 선생
박영호(73) 선생
인터뷰 / ‘잃어버린 예수’ 펴낸 박영호 선생

1970~80년대 정신세계의 기인 가운데 ‘뿐 선생’이 있었다. 요절한 가수 현이와 덕이의 아버지였던 뿐 선생 장규상씨는 첼로 연주자였다. 그는 몸, 마음, 영혼까지도 ‘착각’을 일으키는 장치로 생각하고 자신이 발견한 절대세계를 ‘뿐’이라고 했다. 숭산 선사의 ‘오직 모를 뿐’의 그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순수의식의 에너지를 첼로를 통해 전했다. 누군가 그를 만나러 방에 들어가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첼로만 켰다. 그러면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은 금세 영안이 열렸다. 이 얘기를 들은 한 대학총장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뿐 선생을 찾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뿐 선생이 첼로를 연주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들이 “영계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총장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아이에게 질문하게 했다. 우선 “부처님과 예수님 가운데 누가 더 도가 높냐?”고 물었다. 붓다가 답했다.

“예수님이 높으십니다.”

다음에 예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예수가 답했다.

“부처님이 높으십니다.”

총장은 이어 절집과 교회가 그들의 가르침을 잘 잇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붓다는 “나의 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예수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잃어버린 예수〉(교양인)를 들고 지은이 박영호(73·사진) 선생을 만나러 경기도 의왕으로 가면서 떠오른 것은 뿐 선생 방에서 이를 목격했던 증인으로부터 들은 이 대화였다. 〈잃어버린 예수〉는 “주여, 주여!”를 목 놓아 부르면서 오지 구석구석까지 예수의 말씀을 전한다는 교회가 예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의왕의 조용한 시골마을 집에 들어섰다. 지은이가 홀로 사는 집이다. 감나무 주위로 잡풀이 우거져 있다. 인위적 가공미가 없는 자연 그대로다. 지은이의 얼굴이 해사하고 맑다. ‘과격’한 이미지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세속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도심으로 살았다.

다석 류영모에게 인정받은 유일한 제자
“바울로는 예수 가르침 도그마화” 비판
‘잃어버린 예수’ 찾는 것이 세계평화의 희망
“육체부활 욕망 버리고 진정한 나 찾아야”

조선 팔도 3대 천재의 한명으로 알려졌으면서도 평생 북한산 기슭에서 농사짓고 벌을 치며 살았던 스승 다석 류영모(1890~1981)처럼. 류영모가 기라성 같은 제자들에게도 주지 않았던 ‘졸업장’을 박영호 선생에게만 준 것도 도(道)가 아는 데 있지 않고 행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었을까. ‘다석 사상으로 다시 읽는 요한복음’이란 부제가 붙은 〈잃어버린 예수〉도 사랑의 화신인 예수의 삶을 배타와 독선으로 도그마화한 ‘먹물’에 대한 질타인 것만 같다.

그 먹물은 바로 ‘바울로’다. 오늘날 기독교라는 종교를 있게 한 인물로 추앙받는 바울로의 추락에 독자는 누구나 전율할 것이다. 교회주의자들은 주일마다 귀가 닳도록 교회에서 듣던 ‘육체 부활 신앙’과 ‘대속 신앙’(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 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했다고 믿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단지 바울로의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독자들은 세상의 테러와 폭력과 전쟁을 이끌었던 기독교가 ‘잃어버린 예수’를 되찾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평화로 이끌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전율하게 될 것이다.

바울로에 대한 질타가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레프 톨스토이는 교의신학을 연구하고 나서 “기독교의가 예수와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무엇인가 교회의 의식적인 허위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유럽에서 지금도 문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인물로 늘 첫손에 꼽는 그 톨스토이가 육체 부활이나 대속 신앙과 같은 바울로의 교의신학이 허구라고 선언한 것이다.

톨스토이만이 아니었다. 수리 철학자이자 과정 신학자로 알려진 앨프리드 화이트헤드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 누구보다도 왜곡하고 피폐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울로”라고 썼다. 그들의 생각이 박영호 선생 생각이다. 지은이가 예수의 배반자는 유다가 아니라 바울로라고 하는 까닭은 이렇다.

바울로는 살아 있는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예수가 죽은 뒤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당시 유명한 율법학자 ‘가믈리엘’한테서 율법을 배웠다. 성격이 과격한 근본주의자였던 바울로는 본디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주동자였다.

그런 바울로는 다마스쿠스 성 밖에서 갑자기 쓰러지면서 시력을 잃을 지경이 된 뒤 회심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로는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유치신관’에 머물렀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예수의 신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로는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짐승을 잡아 바치는 대신 예수를 제물로 한 대속 교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바울로가 만든 기독교리는 유대교를 변형시킨 것일 뿐이다.”

바울로는 육체 부활을 얘기했지만, 지은이가 처음 스승 류영모를 찾아갔을 때 스승은 “어머니, 아버지가 낳은 육체는 참나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교회와 목사들은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결코 자유를 주는 법이 없었지만, 스승은 지은이가 꿀맛 같은 가르침에 취해 있을 때 다시는 찾지 말고 홀로 설 것을 명령했다. 스승과 결별해야 하는 설움으로 통곡하면서 그는 홀로 섰다. 그래서 생사와 애증, 욕망의 노예인 제나(자아·에고)에서 벗어나 참나인 ‘얼나’로 솟구쳤다.

〈잃어버린 예수〉
〈잃어버린 예수〉
그 얼나는 붓다의 공(空)이자 불성이었고, 노자·장자의 도였으며, 예수의 하느님이었다. 다석은 이를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고 했다. 털끝만큼도 다른 것이 없으니 종교 간 배타와 증오가 있을 리 없다. 십자가를 앞세운 마녀사냥도, 십자군 전쟁과 아프리카의 노예 사냥과 인디언 대학살도 있을 턱이 없다.

지은이와 함께 마당에 나섰다. 가을이다. 류영모는 여름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고, 가을은 변화된다는 뜻이라 했다. 단감도 잎들도 누렇고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기독교도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욱 아름다움으로 불타고, 새 생명을 잉태하는 가을 단풍처럼.

의왕/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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