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량학살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 한 장면.
‘전쟁국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정책 쓴 최갑수 교수
이-팔 분쟁 속 ‘홀로코스트 담론’
유럽중심주의 틀 안에서 재생산
미국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 “모든 집단기억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소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으로 쓰일 때는 대량학살을 가리키지만 고유명사일 경우는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을 일컫는다. 집시나 르완다의 투치족도 집단학살의 피해자이지만 홀로코스트 기억 만큼 현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누리지 못한다. 홀로코스트는 1970년대 이후 역사학에서 기억담론의 득세를 촉매하는 구실도 했다. 레오폴트 랑케와 같은 ‘근대역사학의 아버지’는 기억을 가변적이라는 이유로 불신했으나 홀로코스트가 공적 담론으로 부상한 이후 집단기억의 호출이 역사학의 큰 줄기가 된 것이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는 김진균기념사업회 연구총서 2권으로 나온 <전쟁국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정책>(문화과학사, 홍성태 엮음)에 실은 글 ‘홀로코스트와 기억의 정치적 이용 그리고 유럽중심주의’에서 홀로코스트 담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홀로코스트 담론을 비판한 세 명의 유대인 학자의 글을 검토했다. 피터 노빅(미국) 톰 세게브(이스라엘) 노먼 핀켈슈타인(미국)이 그들이다.
“세 사람은 자기성찰 능력을 가진 괜찮은 ‘유대인 학자’들이지만 그들도 유럽중심주의에 갇혀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2000년 홀로코스트 기억이 유대인들의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음을 해부하고 폭로한 <홀로코스트 산업>을 펴낸 핀켈슈타인의 비판이 가장 급진적이다. 그는 홀로코스트는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 ‘유대인에 대한 비이성적인 이교도의 끊임없는 증오의 절정’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는 ‘윤리적으로 진실성 없는’ ‘지적 테러리즘’이며 유대인들에게 전면적인 면죄부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최 교수는 밝혔다.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 기억은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적 구출물”이라면서 기억의 담론 자체도 겨냥했다. “비유대인 가운데 홀로코스트 기억 비판을 펴는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유대계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급진 비판론자조차도 “시오니즘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핀켈슈타인이 그의 책 결론 부분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사회는 미국 주류 엘리트들의 판단 여하에 따라 희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나타냈다”면서 “이런 위기의식이야말로 홀로코스트 기억의 부당한 정치적 이용을 정당화하는 시온주의 방책”이라고 밝혔다. 이런 인식은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자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공존을 이끌어내는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이유는 뭘까? 최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그 일부로 하는 더 큰 담론의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홀로코스트 기억과 담론이 유럽중심주의라는 더 큰 담론적 질서의 지지를 받아 그것을 작은 규모로 재생산하면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유럽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을 투사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홀로코스트는 유럽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담론구조의 일부이자 보조장치라는 해석이다. 최 교수는 그 반증으로 홀로코스트 담론에서 발견되는 세가지 분할과 배척을 지적했다. △문명과 야만 내지 비문명의 분할 △문명에 대한 문명의 대량 학살과 야만(비문명)에 대한 문명의 대량학살 사이의 분할과 후자의 배척 △유대인(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할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이말로 문명인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유일무이한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야만에 대한 문명의 학살은 당연히 비교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 교수는 “홀로코스트 담론에는 이스라엘과 유대인 권력이 들어가 다른 기억을 압도하고 있다”면서 “이-팔 분쟁이라는 현실과 담론이 변증법적으로 오고 가야 (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유럽중심주의 틀 안에서 재생산
미국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 “모든 집단기억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소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전쟁국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중동정책 쓴 최갑수 교수
하지만 이런 급진 비판론자조차도 “시오니즘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핀켈슈타인이 그의 책 결론 부분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대인 사회는 미국 주류 엘리트들의 판단 여하에 따라 희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나타냈다”면서 “이런 위기의식이야말로 홀로코스트 기억의 부당한 정치적 이용을 정당화하는 시온주의 방책”이라고 밝혔다. 이런 인식은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자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공존을 이끌어내는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이유는 뭘까? 최 교수는 홀로코스트를 그 일부로 하는 더 큰 담론의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즉 “홀로코스트 기억과 담론이 유럽중심주의라는 더 큰 담론적 질서의 지지를 받아 그것을 작은 규모로 재생산하면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유럽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을 투사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홀로코스트는 유럽중심주의-오리엔탈리즘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담론구조의 일부이자 보조장치라는 해석이다. 최 교수는 그 반증으로 홀로코스트 담론에서 발견되는 세가지 분할과 배척을 지적했다. △문명과 야만 내지 비문명의 분할 △문명에 대한 문명의 대량 학살과 야만(비문명)에 대한 문명의 대량학살 사이의 분할과 후자의 배척 △유대인(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할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이말로 문명인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는 유일무이한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야만에 대한 문명의 학살은 당연히 비교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 교수는 “홀로코스트 담론에는 이스라엘과 유대인 권력이 들어가 다른 기억을 압도하고 있다”면서 “이-팔 분쟁이라는 현실과 담론이 변증법적으로 오고 가야 (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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