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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혼자 크겠다는 아이의 ‘선언’ 들어볼래

등록 2007-11-16 17:43

〈나 혼자 자라겠어요〉
〈나 혼자 자라겠어요〉
읽어보아요 /

〈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지음·정승희 그림/창비·8000원

아동문학 평론가로 얼떨결에 낙인찍힌 지 십여 년. 그 기간 동안 독후감 쓸 책을 고르다가 동시집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 게 딱 두 번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두 번째이다. 별로 시적이지 못한 내 기질에 부지런히 찾아 읽지 못하는 게으름까지 겹쳤으니, 동시집이 눈에 띄는 게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 혼자 자라겠어요>는 내게는 참 특별하다.

시집 한 권이 왜 좋은지 짧게 이유를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냥 시를 소개할까 한다.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바보 같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동시 속에는 아이 마음이 있어야 한다. “빨리 큰다고/버드나무 같은 걸 운동장에/심으라는 말 마세요./청소도 안 해 본 사람들,/나무 많이 심으란 말 마세요.” 아침마다 끝없이 떨어지는 버드나무 잎 쓸기에 지친 아이들의 엄중한 항의가 들리지 않는가. “소 먹이러 함께 가자고 해 놓고/수경이 고년이 안 왔다./지난번 빵 나눠 먹은 걸/도로 내놓으라 할까”에서는 입이 벙긋 벌어진다.

이런 천진한 아이 마음이 주위 생명과 자연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사랑스러움이다. “어머니는 이제/내 어머니만 아니다./우리 집 소, 돼지 어머니도 되고/누가 알겠는가,/밤이면 천장 속에서 달그락대는 생쥐조차/우리 어머니를 제 어머니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같은 시구가 그 절정이다. 송아지가 “박태기 꽃나무에 눈을 줘 보고/사철나무 어린잎에 코도 대 보고/딸랑딸랑 엄마 목 워낭 소리에/멀리 가지 않았어요 대답해 주고” 한다는 풍경 묘사에 가장 흥겹게 담긴 리듬도, 책 전편에 살그머니 혹은 통통 튀며 흐른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소중한 점은, 아이들의 자기정체성 발견과 확립이다.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고 시시하지만, 다람쥐나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하늘의 새’는 신기하다는 자연 발견은 “나는/아무도 나를/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라는 야무진 선언으로 이어진다. 군더더기 없는 시어와 정갈한 리듬, 나직한 목소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빚어진 시가 이토록 힘찬 선언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선포한다.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sjch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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