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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러시아는 왜 이 ‘남자’에 열광하는가

등록 2007-11-30 18:30수정 2007-12-01 19:28

〈남자의 남자, 푸틴〉
〈남자의 남자, 푸틴〉
〈남자의 남자, 푸틴〉
띵즈커 지음·이지은 등 옮김/베이직북스·1만3800원

‘탈 서방’ 중국작가의 눈으로 본 ‘푸틴 현상’
국익 우선한 국정수행이 인기비결
인권·체첸문제엔 “특별한 길” 주장

옛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는 자본주의 진영에겐 승리를, 공산주의 진영에겐 뼈아픈 패배를 의미했다. 냉전의 ‘패배자’들은 정치·경제·사회·군사 등 각 영역에서 쇠퇴했다. 서방의 ‘승리자’들은 정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앞세우며 패자의 땅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패자들의 맏형인 러시아는 세력을 잃었고, 경제적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처지는 많이 바뀌었다. 정치는 강력한 대통령체제 아래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경제는 나날이 성장해 흔히 ‘브릭스’로 통칭되는 고도성장대국 대열에 합류했다.

<남자의 남자, 푸틴>은 변모한 러시아의 중심에 지난 8년 동안 나라를 이끌어 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00년, 2004년 선거에서 각각 53%와 71.2%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두 차례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도 세 차례 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에 관계없이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3%는 그가 내년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한다면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정치적 인기가 전부가 아니다. 러시아 사회는 ‘결혼을 하려면 푸틴 같은 사람과’ ‘푸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노래를 만들어 그에 대한 대중적 사랑을 표현했다. 모스크바의 한 초콜릿 상점은 1.5㎏의 초콜릿으로 푸틴의 두상을 만들었다. 푸틴의 사진을 그려넣은 달력과 티셔츠는 날개돋힌 듯 팔린다. 조각상과 초상화도 등장했다. 이를 통틀어 일컫는 ‘푸틴 현상’(Putinism)이란 말도 생겼다.

푸틴이 누리는 인기의 비결은 국익을 앞세우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성실한 국정수행으로 압축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왼쪽은 프랏코프 러시아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왼쪽은 프랏코프 러시아 총리.
1952년 10월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푸틴은 9학년 때 국가보안부(KGB)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당시 그는 장래희망으로 ‘훌륭한 첩보원’을 적어 내면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들에게 패배를 안겨주고 싶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가 레닌그라드대학 법대를 간 것도, 전과목에서 ‘에이(A)+’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열중한 것도 모두 ‘훌륭한 첩보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1999년 12월31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게서 정권을 ‘이양’받을 때까지 국가보안부-상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시 정부-연방정부로 이어진 정치 역정에서도 그는 줄곧 목표의식과 성실성으로 승부했다. 푸틴이 ‘성실하게’ 임했던 체첸 반군에 대한 강경진압에 대한 외부시선은 따가왔지만 국내 정치에선 안정을 가져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집권 기간 미디어재벌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나 석유기업 ‘유코스’ 사장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 같은 재력가들과 벌인 ‘전쟁’도 러시아 경제성장이 양산한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계급을 제압하겠다는 푸틴의 의지에 따른 실천이었다.

2002년 모스크바 국립대극장 강제진압은 성실성의 이면이다. 푸틴은 수도 한가운데에서 인질극을 벌인 체첸반군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인질의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례적인 약속도 없었다. 단지 ‘테러집단 소탕’이란 뚜렷한 목표와 ‘성실한’ 수행이 있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붙잡혔던 인질 129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 책에 희생자에 대한 제대로 된 언급이 없는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영향력 있는 매체가 많은 서방진영의 목소리는 크다. 이 때문에 우리는 러시아·중국 등을 견제하는 서방식 논리에 자칫 매몰되기 쉽다. 분명 서방이 러시아에 강요하다시피 한 재건요법·모델은 제대로 된 해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 작가가 쓴 푸틴의 전기는 새로운 논리를 제시한다. 그것은 또 다른 쪽으로 편중된 논리이기도 하다. 서구적 관점에선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의 정치가,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특별한 길”이나 “독특한 사회모델”일 수 있을지, 그 판단은 간단치 않다. 더 지켜봐야 할 국제사회의 과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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