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회 등 8개 철학회가 30일 충남대에서 연 ‘한국 철학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김원열 한양사이버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진보·보수학계 150여명 ‘한국철학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
대학선 서양철학 지식 되뇌기만
관심분야 강좌개설로 소통 높여야
‘서울대 위주’ 한국철학회 비판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 철학이 앵무새의 신세를 면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14년 전 한남대에서 정년퇴임한 원로철학자 김병우씨는 그간 한국 대학의 철학 강의는 교과서의 시간이었을 뿐이라고 질타했다. 서양 철학 지식을 되뇌이기만 하는 전달자의 구실에 그쳤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제부터라도 “근본적으로” 철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근본적인 철학은 시대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경제에 예속되어 있고, 경제 제일주의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철학이 근본 구실을 못한 탓”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지난 30일 충남대 문원강당에서 열린 ‘한국철학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나온 목소리다. 한국철학회 등 철학계 8개 단체가 주최한 이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 학회가 처음으로 함께 모여 학계 현안을 터놓고 논의한다는 데서 관심을 모았다. ■ 현실과 멀어진 철학 교육=150여명의 철학자가 모인 토론회에서는 철학계 문제점과 철학이란 학문의 대중적 사회적 소통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이 논의됐다. 이진남 동덕여대 교수는 현 철학계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이 지식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점이라고 했다. 지식이 아니라 ‘철학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이론 전수가 아니라 칸트 철학의 정신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되었을 때” 지식이 아닌 ‘활동의 철학’이 되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으리라는 제언이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철학이 현실과 만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강의실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자신과 상관없는 철학에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라고 물은 뒤 “20세기 한국철학사 강좌를 대학들이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전남대 임용 이후 ‘20세기 한국 지성사’ 강의를 열어 함석헌 유영모의 사상을 가르쳤음을 상기시켰다. 한국 현대사의 사상가 가운데 김지하를 포함해 철학 강의실에서 읽혀야 할 텍스트가 많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삼열 한국철학회 회장은 철학자가 인접 학문까지 섭렵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칸트는 수학과 역사, 법학을 공부해 자기 철학을 세웠다”면서 “오늘날 철학자들도 예술이나 과학, 역사 등 다른 학문의 기본을 토대로 철학을 발전시켜야 하는 데 그동안 철학계가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철학 교육과정의 변신을 통해 소통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한빈 백석대 교수는 철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수 부족으로 상당수 대학의 철학과가 존폐의 위기에 있다면서 철학과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문 철학자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커리큘럼 대신 사회에서 학생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텍스트 이해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철학계 운영 문제점은=국내 8개 철학회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나라 바깥에서 한국 철학계를 대표하고 있는 한국철학회(회장 이삼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운영방식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철학계는 다른 학문 분야와는 달리 5개 철학회가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등 서울과 지방의 갈등 구도가 두드러진 편이다. 역사가 가장 오랜 한국철학회는 서울(대)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김상봉 교수는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에서 가장 괴로운 일은 기조발제를 듣는 일”이라고 했다. 학계 권력자들이 반복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장의 구실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회는 신진학자를 발굴 소개하고 그들의 견해가 공론장에서 비판받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환 성균관대 교수는 철학계의 역사 바로세우기를 강조했다. 그는 독재정권을 이념적으로 떠받들었던 전 시대의 대표주자들이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의 기조 발제자로 최근까지 나서는 등 역사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철학회가 자기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글·사진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관심분야 강좌개설로 소통 높여야
‘서울대 위주’ 한국철학회 비판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 철학이 앵무새의 신세를 면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14년 전 한남대에서 정년퇴임한 원로철학자 김병우씨는 그간 한국 대학의 철학 강의는 교과서의 시간이었을 뿐이라고 질타했다. 서양 철학 지식을 되뇌이기만 하는 전달자의 구실에 그쳤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제부터라도 “근본적으로” 철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근본적인 철학은 시대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경제에 예속되어 있고, 경제 제일주의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철학이 근본 구실을 못한 탓”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지난 30일 충남대 문원강당에서 열린 ‘한국철학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나온 목소리다. 한국철학회 등 철학계 8개 단체가 주최한 이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 학회가 처음으로 함께 모여 학계 현안을 터놓고 논의한다는 데서 관심을 모았다. ■ 현실과 멀어진 철학 교육=150여명의 철학자가 모인 토론회에서는 철학계 문제점과 철학이란 학문의 대중적 사회적 소통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이 논의됐다. 이진남 동덕여대 교수는 현 철학계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이 지식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점이라고 했다. 지식이 아니라 ‘철학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이론 전수가 아니라 칸트 철학의 정신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되었을 때” 지식이 아닌 ‘활동의 철학’이 되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으리라는 제언이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철학이 현실과 만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강의실 속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자신과 상관없는 철학에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라고 물은 뒤 “20세기 한국철학사 강좌를 대학들이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전남대 임용 이후 ‘20세기 한국 지성사’ 강의를 열어 함석헌 유영모의 사상을 가르쳤음을 상기시켰다. 한국 현대사의 사상가 가운데 김지하를 포함해 철학 강의실에서 읽혀야 할 텍스트가 많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삼열 한국철학회 회장은 철학자가 인접 학문까지 섭렵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칸트는 수학과 역사, 법학을 공부해 자기 철학을 세웠다”면서 “오늘날 철학자들도 예술이나 과학, 역사 등 다른 학문의 기본을 토대로 철학을 발전시켜야 하는 데 그동안 철학계가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철학 교육과정의 변신을 통해 소통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한빈 백석대 교수는 철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수 부족으로 상당수 대학의 철학과가 존폐의 위기에 있다면서 철학과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문 철학자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커리큘럼 대신 사회에서 학생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텍스트 이해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 철학계 운영 문제점은=국내 8개 철학회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나라 바깥에서 한국 철학계를 대표하고 있는 한국철학회(회장 이삼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운영방식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철학계는 다른 학문 분야와는 달리 5개 철학회가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등 서울과 지방의 갈등 구도가 두드러진 편이다. 역사가 가장 오랜 한국철학회는 서울(대)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김상봉 교수는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에서 가장 괴로운 일은 기조발제를 듣는 일”이라고 했다. 학계 권력자들이 반복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장의 구실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학회는 신진학자를 발굴 소개하고 그들의 견해가 공론장에서 비판받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상환 성균관대 교수는 철학계의 역사 바로세우기를 강조했다. 그는 독재정권을 이념적으로 떠받들었던 전 시대의 대표주자들이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의 기조 발제자로 최근까지 나서는 등 역사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철학회가 자기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글·사진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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