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씨, 안보윤 씨, 정한아 씨 (왼쪽부터)
〈현대문학 2008년 1월호〉
김애란·정한아·안보윤 외 지음.현대문학·임시특가 1만4000원 ‘현대문학’새해특집 ‘80에서 08까지’
문학의 미래 짊어질 14명 육성 담아
‘글쓰기는 힘들지만 평생의 업’ 신념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의 매년 1월호는 문인들과 문단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권말부록 ‘문인주소록’ 때문이다. 문인 3100여명(올해)과 문학잡지 및 문학 관련 단체의 명단과 연락처가 담긴 주소록은 1차 자료로서 썩 요긴하다. 〈현대문학〉 올 1월호에서 문인주소록과 함께 눈길을 끄는 꼭지가 있다. 신년호 특집으로 마련한 ‘80에서 08까지’라는 기획이다. 80년대에 태어난 문인 14명을 초대해 등단 전후의 변화, 성장과정과 일상, 문학적 신념 등을 들었다. 벌써 소설집 두 권을 낸 ‘80년대산 작가의 기수’ 김애란부터 갓 등단해 두어 편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인 생짜 신인들까지 한국 문학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들의 풋풋한 육성이 담겨 있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 권의 소설집을 낸 김애란(사진 맨 왼쪽)씨는 ‘당신과 조우’라는 글에서 등단 무렵을 정겹게 회고한다. 전화로 등단 소식을 듣고 그가 처음 한 질문은 ‘소설인가요, 시인가요?’였다. 양쪽 모두 응모했던 것. “나는 내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알고 싶었다.”(시가 당선되었으면 지금쯤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 되었을라나?) 소식을 알리고자 시골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모친은 까칠한 삶과 화해하고자 노래방에 가 있다. 학교 친구들과 배스킨라빈스 제품을 흉내낸 싸구려 케이크를 앞에 놓고 벌인 축하 잔치를 두고 그는 이렇게 쓴다: “강북의 후미진 부엌 어딘가에서 (…) 뭔가 열심히 흉내내고 있었을 제빵사처럼, 그렇게 조금씩 모자라고, 우스꽝스럽고, 따사로운 무엇이 나를 키우고 가르친 건 아니었을까.” 장편 〈악어떼가 나왔다〉로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안보윤(중간)씨처럼 식구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다가 아예 ‘합법적인 거짓말쟁이’로 나선 경우가 있는가 하면, 200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염승숙씨는 자신을 알기 위한 공상이 소설 쓰기로 이어졌노라고 밝힌다. 문학의 위상이 악화일로를 걷는 현실에서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이 젊은이들의 선택은 가상하면서 동시에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이들은 문학에 대한 애정과 신념의 고백에 적극적이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존재의 확장이자 자유의 확인이다.
“쓰지 않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쓰는 나는 다르다. 쓰는 나는 가장 높이 올라가며 동시에 가장 바닥까지 더듬는다.”(김사과) “시를 쓰는 동안은 자유로워서 좋다. 무엇보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세상에 빚진 게 없어서 좋다.”(김원경) 장편 〈달의 바다〉로 지난해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정한아(오른쪽)씨 역시 “언젠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이 흔들리는 자신을 지탱해 준다고 토로한다. 문학을 향한 애정과 신념이 튼튼하다 해도 이들 모두에게 밝고 희망찬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등단은 시작일 뿐, 이들의 앞길에는 터널처럼 캄캄한 날들이 놓여 있기 십상이다. ‘잘나가는’ 김애란조차 언젠가 닥쳐올 슬럼프를 각오하고 있을 정도로 험하고 불확실한 길이다. 그렇지만 그런 현실주의가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그들이 젊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어떤 질곡 언저리에서, 내가 만든 노래방 한구석에서 당신과 조우할 수 있게”(김애란) 되기를 바라는 이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싶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안보윤 사진은 문학동네 제공
김애란·정한아·안보윤 외 지음.현대문학·임시특가 1만4000원 ‘현대문학’새해특집 ‘80에서 08까지’
문학의 미래 짊어질 14명 육성 담아
‘글쓰기는 힘들지만 평생의 업’ 신념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의 매년 1월호는 문인들과 문단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권말부록 ‘문인주소록’ 때문이다. 문인 3100여명(올해)과 문학잡지 및 문학 관련 단체의 명단과 연락처가 담긴 주소록은 1차 자료로서 썩 요긴하다. 〈현대문학〉 올 1월호에서 문인주소록과 함께 눈길을 끄는 꼭지가 있다. 신년호 특집으로 마련한 ‘80에서 08까지’라는 기획이다. 80년대에 태어난 문인 14명을 초대해 등단 전후의 변화, 성장과정과 일상, 문학적 신념 등을 들었다. 벌써 소설집 두 권을 낸 ‘80년대산 작가의 기수’ 김애란부터 갓 등단해 두어 편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인 생짜 신인들까지 한국 문학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들의 풋풋한 육성이 담겨 있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 권의 소설집을 낸 김애란(사진 맨 왼쪽)씨는 ‘당신과 조우’라는 글에서 등단 무렵을 정겹게 회고한다. 전화로 등단 소식을 듣고 그가 처음 한 질문은 ‘소설인가요, 시인가요?’였다. 양쪽 모두 응모했던 것. “나는 내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알고 싶었다.”(시가 당선되었으면 지금쯤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 되었을라나?) 소식을 알리고자 시골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모친은 까칠한 삶과 화해하고자 노래방에 가 있다. 학교 친구들과 배스킨라빈스 제품을 흉내낸 싸구려 케이크를 앞에 놓고 벌인 축하 잔치를 두고 그는 이렇게 쓴다: “강북의 후미진 부엌 어딘가에서 (…) 뭔가 열심히 흉내내고 있었을 제빵사처럼, 그렇게 조금씩 모자라고, 우스꽝스럽고, 따사로운 무엇이 나를 키우고 가르친 건 아니었을까.” 장편 〈악어떼가 나왔다〉로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안보윤(중간)씨처럼 식구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다가 아예 ‘합법적인 거짓말쟁이’로 나선 경우가 있는가 하면, 200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염승숙씨는 자신을 알기 위한 공상이 소설 쓰기로 이어졌노라고 밝힌다. 문학의 위상이 악화일로를 걷는 현실에서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이 젊은이들의 선택은 가상하면서 동시에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이들은 문학에 대한 애정과 신념의 고백에 적극적이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존재의 확장이자 자유의 확인이다.
“쓰지 않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쓰는 나는 다르다. 쓰는 나는 가장 높이 올라가며 동시에 가장 바닥까지 더듬는다.”(김사과) “시를 쓰는 동안은 자유로워서 좋다. 무엇보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세상에 빚진 게 없어서 좋다.”(김원경) 장편 〈달의 바다〉로 지난해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정한아(오른쪽)씨 역시 “언젠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이 흔들리는 자신을 지탱해 준다고 토로한다. 문학을 향한 애정과 신념이 튼튼하다 해도 이들 모두에게 밝고 희망찬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등단은 시작일 뿐, 이들의 앞길에는 터널처럼 캄캄한 날들이 놓여 있기 십상이다. ‘잘나가는’ 김애란조차 언젠가 닥쳐올 슬럼프를 각오하고 있을 정도로 험하고 불확실한 길이다. 그렇지만 그런 현실주의가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그들이 젊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어떤 질곡 언저리에서, 내가 만든 노래방 한구석에서 당신과 조우할 수 있게”(김애란) 되기를 바라는 이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싶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안보윤 사진은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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