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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주는’ 세종-‘끌고가는’ 정조

등록 2008-01-14 19:30수정 2008-01-14 19:36

세종 / 정조
세종 / 정조
박현모 교수 글 ‘리더십 비교’

세종 “충분한 토론 거쳐 업무 위임”
정조 “국정목표 설정 뒤 동참 설득”

세종과 정조는 조선의 대표적인 ‘군사(君師)’로 칭송받고 있다. 군사란 임금이 곧 스승이란 의미다. 마침 이들을 다룬 사극이 방송 전파를 타고 있다. 드라마 제작에 발맞춰 두 군주의 삶과 정치를 다룬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종과 정조, 이들이 국가를 통치하는 방식의 닮은 꼴과 다른 꼴은 무엇일까?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동양철학 비평·리뷰지인 <오늘의 동양사상> 제17호에 투고한 글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 비교>에서 이 문제를 검토했다. 박 교수는 둘의 리더십 차이를 결론적으로 이렇게 규정했다. “세종이 ‘뒤에서 미는’ 방식의 지도력을 발휘했다면, 정조는 ‘앞에서 끄는’ 방식의 지도자였다.” 즉 세종은 충분한 찬반토론을 거쳐 정책의 장단점을 드러나게 한 다음, 그 일을 주관할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긴 반면, 정조는 국정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신하들에게 그 길에 동참하도록 설득하거나 위협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회의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고 지은이는 밝혔다. 세종은 “어전회의를 국가 운영의 핵심적 과정으로 부각시키”려고 했다. 태조와 태종 때 23회와 80회에 불과했던 어전회의인 경연을 세종은 무려 1898회 열었다는 것이다. 세종은 경연에서 말끝마다 “경들의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하여 신료들의 토론 참여를 적극 유도했다고 박 교수는 적었다. 세종의 회의 활성화 전략에는 ‘자신의 약점 드러내기’도 포함된다. 그는 계속되는 가뭄에 “죄는 실로 나에게 있다. 마음이 아프고 낯이 없어서 어떻게 할 줄을 알지 못하겠다”고 했다.

반면 정조는 자신이 직접 나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혁한다는 혐의’를 두려워 하는 개혁 반대론자들에게 “현상 유지의 폐해가 훨씬 심각하다”면서 개혁의 정당성을 강하게 피력했다는 것이다. 송나라때 개혁을 시도했던 왕안석과 같은 인물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도 정조의 개혁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정조는 경연에서 왕안석을 재평가함으로써 개혁 부정론과 소극적 국왕론을 동시에 극복하려고 했다. 재위 15년의 ‘중용강의’가 그 예다.” 중용 강의에서 좌의정 채제공이 “한 자의 글을 읽는 것보다 한 치의 실천이 낫다”고 하자 정조는 이에 공감하며 “용의 고기가 어떻다고 하는 것보다는 돼지고기라도 먹는 것이 낫다”고 했다는 것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 까닭을 실천이 아니라 앎의 문제로 보는 당시 보수적 노론 신하들의 견해를 경연에서 정면 반박한 것이다.

말투와 성격도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이라고 했다. 정조의 말 첫머리에는 “그렇지 않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경들이 하는 일이 한탄스럽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고 했다. 반면 세종은 “일단 긍정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예컨대 “네 말이 아름답다” “경들이 말을 합하여 간하니,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긴다”고 말한 뒤 “그러나 말을 따를 수는 없다”고 하는 식이다.

“세종이 ‘정치적 리더십’에서 뛰어났다면 정조는 ‘지적 리더십’에서 역사에 기여했다.” 박 교수는 세종 시대 배출된 100여 명의 집현전 학사가 조선 전기의 기틀을 닦은 정치적 공로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이나 박지원과 같은 걸출한 학자로 성장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정조의 ‘가르치기 좋아하는’ 회의 방식이 정약용 박제가 등의 왕성한 학문적 결실로 이어진 점을 긍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평가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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