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왼쪽)과 〈연경, 담배의 모든 것〉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정운경 지음·정민 옮김/휴머니스트·1만3000원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이옥 지음·안대회 옮김/휴머니스트·1만4000원 18세기 조선은 변화의 시대였다. ‘조선의 지식인’ 사대부들 사이에서 성리학 이외의 ‘지식’이 붓끝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 같은 주변부 지식인들이 새로운 기풍을 길어올렸다. 이들은 명분 있는 말 대신에 쓸모 있는 지식에 눈을 돌렸고, ‘실사구시’로 상징되는 새로운 지식인을 탄생시켰다. 휴머니스트가 기획한 ‘18세기 지식 시리즈’는 이렇게 출현한 새로운 지식인들이 남긴 지적 실험을 발굴하려는 시도다. 이들은 정치, 철학, 윤리 같은 주제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이들은 음식과 사물, 취미, 여행, 일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이나 <연경, 담배의 모든 것>은 이런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탐라문견록…>은 1731년 제주도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간 사대부 정운경이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써내려간 제주 르포다. 32살로 사대부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벼슬을 하지 못했던 그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의 삶을 기록으로 남길 작정을 했다. 그런 그의 귀에 들어온 것이 풍랑을 만나 일본·베트남 등에 표류했던 이들의 체험 육성이었다. 14건의 표류담이 기록됐는데, 일본과 대만은 물론 베트남을 이르는 ‘안남국’과 일본 오키나와를 이르는 ‘유구국’ 표류기도 실려 있다. 안남국 편에는 코끼리나 원숭이 같은 동물을 기르며, 남자는 천하고 여자가 높은 풍속을 가졌다는 보고도 나온다. 이처럼 낯선 풍물과 풍속에 대한 얘기는 당대의 지식인 사회에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익은 <성호사설>에 정운경의 저작을 인용했고, 연암 박지원, 서유구 등 쟁쟁한 문인·학자들도 이에 대한 언급을 남겼다. 18세기 신지식인들 지식 지평 확장
제주도민 표류담 담은 ‘탐라견문록…’
<연경…>은 전주 이씨 집안의 사대부 이옥이 1810년에 써내려간 조선의 흡연 문화사이다. 이옥은 1792년 성균관 유생 시절 정조가 출제한 문장 시험에 전통을 거스르는 ‘괴이한’ 문체를 구사해 왕의 질책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군역에 강제 복무하는 징계를 당했고 높은 벼슬에 나갈 길도 끊겼다. 이후 문학 창작으로 발길을 돌린 뒤 끝까지 개성적인 소재와 문체를 고집한 이단아이기도 하다. ‘연경’이란 한자 뜻풀이를 하면 ‘담배의 경전’이란 의미다. 그야말로 담배에 관한 당대의 지식과 풍속, 심지어 금연 논쟁까지 다채롭게 기록했다. <연경…>은 지금 읽어도 흥미로운 정보와 개성적인 문장이 눈에 띈다. 예컨대 담배가 맛있을 때를 기록하는 글은 이러하다.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서 있다. … 입을 닫은 채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급히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대를 피우자 오장육부가 모두 향기롭다.” <연경…>에는 이옥의 저작 말고도 담배에 관한 옛글들이 11편 추가됐다. 이 글들에도 남녀노소·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즐기던 흡연 문화와 여기에서 비롯한 금연 논쟁의 시끌벅적함이 생생하다. 심지어 정조마저 “민생에 이롭게 사용되는 것으로서 이 풀에 필적할 은덕과 이 풀에 견줄 공훈이 있는 물건이 어디 있는가”라며, 금연 논쟁에 끼어든 애연가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8세기 지식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긴이는 우리 옛글과 옛사람을 새롭게 해석해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저자들이다. <미쳐야 미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을 펴낸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학)가 <탐라문견록…>을 내놓았고, <조선의 프로페셔널> <선비답게 산다는 것> 등을 쓴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가 <연경…>을 선보였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정운경 지음·정민 옮김/휴머니스트·1만3000원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이옥 지음·안대회 옮김/휴머니스트·1만4000원 18세기 조선은 변화의 시대였다. ‘조선의 지식인’ 사대부들 사이에서 성리학 이외의 ‘지식’이 붓끝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 같은 주변부 지식인들이 새로운 기풍을 길어올렸다. 이들은 명분 있는 말 대신에 쓸모 있는 지식에 눈을 돌렸고, ‘실사구시’로 상징되는 새로운 지식인을 탄생시켰다. 휴머니스트가 기획한 ‘18세기 지식 시리즈’는 이렇게 출현한 새로운 지식인들이 남긴 지적 실험을 발굴하려는 시도다. 이들은 정치, 철학, 윤리 같은 주제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이들은 음식과 사물, 취미, 여행, 일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이나 <연경, 담배의 모든 것>은 이런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탐라문견록…>은 1731년 제주도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간 사대부 정운경이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써내려간 제주 르포다. 32살로 사대부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벼슬을 하지 못했던 그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의 삶을 기록으로 남길 작정을 했다. 그런 그의 귀에 들어온 것이 풍랑을 만나 일본·베트남 등에 표류했던 이들의 체험 육성이었다. 14건의 표류담이 기록됐는데, 일본과 대만은 물론 베트남을 이르는 ‘안남국’과 일본 오키나와를 이르는 ‘유구국’ 표류기도 실려 있다. 안남국 편에는 코끼리나 원숭이 같은 동물을 기르며, 남자는 천하고 여자가 높은 풍속을 가졌다는 보고도 나온다. 이처럼 낯선 풍물과 풍속에 대한 얘기는 당대의 지식인 사회에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익은 <성호사설>에 정운경의 저작을 인용했고, 연암 박지원, 서유구 등 쟁쟁한 문인·학자들도 이에 대한 언급을 남겼다. 18세기 신지식인들 지식 지평 확장
제주도민 표류담 담은 ‘탐라견문록…’
〈소 등에 탄 여인〉. 작자미상. 어린아이를 앉고서 소 등에 탄 젊은 아낙네가 오른손에 곰방대를 들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가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일반 여성도 자연스럽게 흡연을 즐겼다.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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