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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건축은 땅과의 감응…분배·공유 가능해야”

등록 2008-02-22 20:58수정 2008-02-25 10:44

‘사람 건축 도시’ 등 2권 펴낸 건축가 정기용씨
‘사람 건축 도시’ 등 2권 펴낸 건축가 정기용씨
인터뷰 / ‘사람 건축 도시’ 등 2권 펴낸 건축가 정기용씨

건축 공공성 중시하는 ‘사회적 건축가’
투병 계기로 20년 활동 정리작업
“한국 무감응병…건축 인문학적 논의를”

지난 20년 동안 그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았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끝내면 시계 바늘은 10시를 훌쩍 지나 있었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 영화를 보고 라면으로 허기를 채운 뒤 글을 썼다. 글은 밤을 하얗게 태우고 남겨진 정제된 사유의 조각이었다. 건축가 정기용(63·사진·기용건축 대표)씨의 〈사람 건축 도시〉(현실문화·2만8000원)와 〈서울 이야기〉(현실문화·2만5000원)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그 조각들을 모아 다시 견고하게 다진 사유의 흙집이다. 정씨의 글은 그가 짓는 흙벽처럼 단단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그만의 사유 공간을 만져질 듯 그려 보인다.

〈사람 건축 도시〉 〈서울 이야기〉는 모두 다섯 권으로 나올 정씨의 전집 가운데 1차로 나온 것이다. 그는 갑년을 맞은 지난 2005년 큰 병을 앓았다. “지인과 제자들이 나서서 전집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을 떨치고 일어났지만, 지인과 제자들은 그가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1986년부터 20년 동안 한국 사회에 남긴 행적을 정리하자는 뜻에 변함이 없었다.

그를 ‘흙 건축의 대가’로 만든 흙집들, ‘공간의 시인’ ‘사회적 건축가’ ‘감응의 건축가’ 등의 수식어를 붙여준 ‘기적의 도서관’과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 등은, 실은 그의 사유를 번역해 공간에 현실화한 결과물이다. 그의 전집은 공간에 관한 창조적인 사유를 말로 풀어내온 것을 그려 모아 응축한 말의 건축물이다. 책을 통해 그는 우리 사회가 건축에 관한 인문학적인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항상 어딘가에 거주하고, 그 장소들은 기억에 거주합니다. 기억의 총체는 인간의 내면입니다. 건축가는 건축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총체를 이루는 기억에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시간의 켜를 덧입은 건축물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의미의 창구’가 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다. “전세계에서 집을 제일 많이 짓고 제일 많이 허무는 나라이면서 건물을 짓고 허무는 문제를 국회의원 한 사람 당선되는 것만큼도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사는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사람 건축 도시〉(왼쪽)과〈서울 이야기〉
〈사람 건축 도시〉(왼쪽)과〈서울 이야기〉
그는 건축을 ‘감응’이라고 말로 설명한다. 땅이 침묵 속에서 은근한 속삭임으로 말을 건네오면, 건축가가 하는 일은 땅이 주는 감응에 따라 땅이 원하는 건축과 건축주가 원하는 건축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다. 그가 유신이 선포되던 해인 7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86년 돌아와 본 한국 땅은 낯설었다. 농촌에는 지붕과 벽이 허물어지고 생철지붕 올라와 있었고, 뽕나무밭이던 ‘강남’에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백화점이 들어서 있었다. ‘무감응’의 땅 위에서 한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끝을 모르고 내달렸다. “마치 지금 한국 땅은 읽을 틈도 주지 않고 써내려가는 대하소설과 같아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내는 시간의 이정표가 모두 사라진 서울에서 사람들은 길을 잃고 만다. 그의 글은 지난 30년 동안 짓고 허문 수많은 건축물들, 지금은 사라져버린 서울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대해 뒤늦게라도 진지하게 성찰해보라고 촉구한다.

이 책들은 정씨가 꼭 20년 만에 내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첫 책은 번역서였다. 흙벽돌을 사용하는 이집트의 전통 건축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건축가 하산 화티의 이야기를 담은 〈이집트 구르나마을 이야기〉를 88년 국내에 번역해 소개했다. ‘흙 건축 대가’로 알려진 그의 여정은 프랑스 유학 시절 처음 만난 이 책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주로 사적으로 전유되고 소비되는 미술품의 생리에 갈등하다가 분배와 공유가 가능한 건축의 공공성에서 대안을 찾았다. 영국의 건축가 윌리엄 모리스의 평전이 불을 댕겼다. 분배에 이바지하고 노동에 만족하고 환경의 질을 높였다는 윌리엄 모리스 인생의 세 가지 원칙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한창 건축책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본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기름을 부었다.

“천 명이 동시에 같은 그림을 볼 수는 없는 거거든요. 각기 다른 동네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을 같은 공간에서 듣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의 전집은 그 엄청난 일을 설계하는 건축가 사유의 핵심을 담고 있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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