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의 한 실종자 가족이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장악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군인에게 가족의 행방을 묻고 있다. 가족 뒤로 계엄군이 미처 떼어내지 못한 대자보도 보인다. 5·18기념재단 제공
‘5·18 그리고 역사’ 배경·과정·분야별 영향 분석…대학 강의서로 안성맞춤
6월항쟁 승리 등 민주주의 발판
자유·평등주의 열망 부르고
서로주체들의 연대 가능성 제시 지난 2005년부터 광주와 전남 지역 대학들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정규 교양과정이 개설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남대에서만 모두 320여명 학생이 ‘5·18항쟁과 민주·인권’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문제는 교재였다. 기존의 5·18 관련 책자는 학술자료집이나 특정 분야의 연구서 위주여서 수업에 맞춤한 적절한 교재를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강사진은 수업 준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앞으로는 이런 수고를 덜게 됐다. 역사와 정치학·사회학·문학·미술사·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재적 의의를 다각도로 조명한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5·18 그리고 역사-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길). 5·18 강의를 맡거나 주도적으로 개설한 최영태·조정관 전남대 교수와 신일섭 호남대 교수 등이 강의 교재를 염두에 두고 직접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은 5·18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이 운동이 한국 정치와 사회·문화·예술 운동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철학적 관점에서 5·18의 정신사적 영향을 분석한 김상봉·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글이 실려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일부 글들은 교양강좌 교재가 지향하는 기존 연구 성과의 나열을 넘어 5·18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글이 조정관 교수가 쓴 ‘5·18항쟁이 한국 민주화에 끼친 영향’이다. 그는 5·18이 한국 민주주의를 심화 진전시키는 도정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음을 다각도로 짚었다.
우선 광주 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 결여가 오히려 민주화로 가는 길을 넓혔다는 데 그는 주목했다. 전 정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박정희 정권과는 달리, 민주화로 가는 과도기 정부임을 자임하며 부분적으로 정치적 다원주의를 허용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화운동의 확대로 이어졌다. 조 교수는 이런 양보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학살로 인한 지배의 정통성 결여가 깔려 있다고 했다.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한 전두환 정권은 정권의 존재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과도기 정부임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정치적 자유주의에 더해 사회·경제적 평등주의를 꿈꾸는 민중 지향의 진보적 이념을 꿈꾸게 된 데도 5·18이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국가의 야만적 폭력과 항쟁 과정의 민중의 자발적 참여와 주도를 보면서 민주화 운동가들은 급진적 이데올로기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사회 지배 질서를 뒤엎는 사회학적 상상력도 불러왔다”는 해석이다.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제기되면서 자주와 반미의 관점이 확립된 점도 지적됐다. 이 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민중의 생존권 투쟁과 반미자주화투쟁을 포함하게 되었고 남·북한 문제에서도 통일 지향적 민족 운동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또 6월 항쟁이 군부의 개입 없이 민주화 세력의 승리로 귀결된 데도 5·18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봤다. 광주의 처절한 민중 저항의 기억이 군부의 군 동원을 저지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5공 정권의 핵심세력들은 설사 시위 진압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광주의 기억으로 인해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조 교수는 썼다. 박구용 교수는 글 ‘서로주체의 형성사로서 동학농민전쟁과 5·18항쟁’에서 시민군이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은 “서로가 함께 주체가 되기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과 지켜야 할 연대성 때문이었다”면서 5·18 정신은 자유주의적 인권 개념으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5·18 광주는 광주를 넘어 자유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서로주체로서 정의로운 연대공동체를 지향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광주정신은 보편주의적 인권 개념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서로주체들의 진정한 자기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권의 이념”을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자유·평등주의 열망 부르고
서로주체들의 연대 가능성 제시 지난 2005년부터 광주와 전남 지역 대학들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정규 교양과정이 개설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남대에서만 모두 320여명 학생이 ‘5·18항쟁과 민주·인권’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문제는 교재였다. 기존의 5·18 관련 책자는 학술자료집이나 특정 분야의 연구서 위주여서 수업에 맞춤한 적절한 교재를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강사진은 수업 준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앞으로는 이런 수고를 덜게 됐다. 역사와 정치학·사회학·문학·미술사·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5·18 민주화운동의 현재적 의의를 다각도로 조명한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5·18 그리고 역사-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길). 5·18 강의를 맡거나 주도적으로 개설한 최영태·조정관 전남대 교수와 신일섭 호남대 교수 등이 강의 교재를 염두에 두고 직접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은 5·18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이 운동이 한국 정치와 사회·문화·예술 운동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철학적 관점에서 5·18의 정신사적 영향을 분석한 김상봉·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글이 실려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일부 글들은 교양강좌 교재가 지향하는 기존 연구 성과의 나열을 넘어 5·18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과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글이 조정관 교수가 쓴 ‘5·18항쟁이 한국 민주화에 끼친 영향’이다. 그는 5·18이 한국 민주주의를 심화 진전시키는 도정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음을 다각도로 짚었다.
‘5·18 그리고 역사’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정치적 자유주의에 더해 사회·경제적 평등주의를 꿈꾸는 민중 지향의 진보적 이념을 꿈꾸게 된 데도 5·18이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국가의 야만적 폭력과 항쟁 과정의 민중의 자발적 참여와 주도를 보면서 민주화 운동가들은 급진적 이데올로기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사회 지배 질서를 뒤엎는 사회학적 상상력도 불러왔다”는 해석이다.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제기되면서 자주와 반미의 관점이 확립된 점도 지적됐다. 이 결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민중의 생존권 투쟁과 반미자주화투쟁을 포함하게 되었고 남·북한 문제에서도 통일 지향적 민족 운동을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또 6월 항쟁이 군부의 개입 없이 민주화 세력의 승리로 귀결된 데도 5·18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고 봤다. 광주의 처절한 민중 저항의 기억이 군부의 군 동원을 저지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5공 정권의 핵심세력들은 설사 시위 진압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광주의 기억으로 인해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조 교수는 썼다. 박구용 교수는 글 ‘서로주체의 형성사로서 동학농민전쟁과 5·18항쟁’에서 시민군이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은 “서로가 함께 주체가 되기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과 지켜야 할 연대성 때문이었다”면서 5·18 정신은 자유주의적 인권 개념으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5·18 광주는 광주를 넘어 자유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서로주체로서 정의로운 연대공동체를 지향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광주정신은 보편주의적 인권 개념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서로주체들의 진정한 자기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권의 이념”을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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