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수 예비역 장군
36년동안 써온 일기 묶어 책 낸 윤영수 예비역 장군
36년 전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한달 봉급은 얼마나 됐을까?
1972년 32기로 입교했던 윤영수(사진) 전 60사단장의 옛날 일기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2학년이던 73년 4월10일 일기를 생도 봉급과 씀씀이를 계산한 내용으로 채웠다. 봉급 7천원 중 공제액을 빼고 실제 손에 쥐는 돈은 4200원이었다. 여행비와 모교 모임 비용으로 1300원을 쓰고, 부모님 선물 값으로도 1천원을 책정했다. 빌려준 돈을 받고 지난달 잔액을 합치면 3400원. 그는 “이 돈으로 한 달은 충분히 쓸 것도 같은데…. 역시 돈은 활력소가 되는군”이라고 일기장에 썼다.
윤 전 사단장은 이런 일기를 육사 입교 이래 지금껏 단 하루도 안 빼먹고 써왔다. 최근엔 이를 묶어 <나는 행복한 군인이었다>(창조문예사)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하루 하루 쓰다 보니 어느덧 36년의 기록이 됐다”고 말했다.
쌓인 일기가 워낙 방대해, 책에는 한 달에 하루 이틀치씩밖에 담지 못했다. 그래도 들추는 갈피마다 그가 몸담았던 군의 지난 역사가 엿보인다. 78~79년엔 대통령 경호관으로 청와대 파견근무를 했다. 79년 10월과 11월의 일기는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과 그에 따른 경호실의 급박한 변화를 담고 있다. 그는 “남들은 뭐라해도 (차지철) 실장님의 깊은 충성심과 패기와 결단력에 대해 군인으로서 존경심을 표한다”고 썼다. 차 전 실장을 젊은 경호관의 눈으로 바라본 드문 기록이 될 터이다.
이후 군으로 복귀해 30사단 포병연대장, 합참 군사협력과장, 한미연합사 기획참모차장 등을 지냈고, 60사단장과 미 중부사령부 협조단장을 마지막으로 지난해 말 전역했다. 이 시기 일기장 곳곳엔 보수적 시각에서 전작권 환수나 5029의 작전계획화 무산 등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래도 30여년간 41번을 이사다닌 군 생활의 기억을 ‘고초’가 아닌 ‘긍지’로 되새기는 장면에선 허투루 세월을 보내지 않은 강직한 군인의 자부가 느껴진다.
그는 “매일 밤 또는 새벽에 일기장을 펴고 한 줄이라도 써내려 갈 때가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일기쓰기를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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