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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진보진영 위기 어디에서 왔나

등록 2008-03-28 17:24

‘좋은정책포럼’ 창립 2돌 기념심포지엄 열려
노무현 정부 실패 → 진보진영 실패로 ‘전이’
‘낡은 이념’ 싸움, 일보 전진 아닌 후퇴 제기

한국 진보진영이 낡은 이념과 가치에 매달려 대위기에 봉착했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자율·연대·생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진보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은 좋은정책포럼이 창립 2돌을 맞아 2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연 기념심포지엄 ‘한국 진보의 대전환-구진보에서 새 진보로’에서 나왔다.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인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이날 발표한 기조발제문 ‘그레이트 코리아를 위한 새 진보의 길’에서 현재 진보진영이 처한 위기가 일시적인 순환적 위기가 아닌 지속적·구조적 위기라고 진단하고, 그 원인과 대안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특히 한국 진보의 위기가 진보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서 비롯됐다며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방안으로 열 가지 새 진보 실천 준칙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가 제시한 실천 준칙에는 △반기업 이미지 탈각 △국가안보 중시 등 주로 보수파가 강조해온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안 제시에 앞서 진보진영이 대위기에 빠진 원인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먼저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진보진영 전반의 실패로 전이되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는 보수적 정치사회 구조가 건재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채 ‘이상주의적 독선’을 고집하다가 국정 실패로 귀결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전략적 마인드 없이 이상주의를 밀고나가다 국민으로부터 격리됐다는 것이다. “요컨대, 헤게모니 전략의 부재가 국정 실패를 낳았다.”


김 교수는 또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 요인으로 △국민의 평균적 정서에 반하는 대북정책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부동산 정책 △결과적 평등에만 집착한 교육정책을 들었다. 이와 함께 국가보안법 폐기와 같은 이상주의적 개혁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과 같은 현실주의적 자유주의 사이에서 동요한 점, 재벌개혁과 같은 경제민주주의와 규제완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한 점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를 키웠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특히 모든 정책 실패 요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민생정책 실패를 꼽았다. 노무현 정부가 민중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탓에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느냐’는 보수파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우파반정’의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나아가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진보정당과 진보적 사회운동도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은 노무현 정부 실패가 진보 전반의 불신으로 전이된 ‘부정적 외부효과’ 때문에 피해를 입은 측면도 있지만, 진보정당 내부의 문제점 때문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진보정당 내부의 실패 원인으로 민족해방(NL) 대 민중해방(PD) 같은 낡은 이념을 둘러싼 대립을 지목했다. 김 교수는 진보적 사회운동도 실패했다면서, 특히 노동운동이 “낡은 이념과 운동방식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고립됐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 모든 것이 구진보의 위기를 보여준다며 △폐쇄적 민족주의 △노동자 중심주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수평적 평등주의 △분배 편향성 △이념과잉 △정치과잉과 같은 오류와 편향이 그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지금 한국에서 진보의 위기는 곧 신뢰의 위기이며 정당성의 위기”라고 요약했다.

이런 진단 위에서 그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낡은 패러다임과 과감히 단절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며, 자율·연대·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사회적 타협을 추구하는 중도진보’를 새 진보의 패러다임으로 내놓았다. 김 교수는 자율의 가치가 “개인과 집단의 자기결정과 사회적 책임 완수”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신자유주의의 자유기업주의와 구진보의 국가개입주의 양자의 동시 극복을 강조했다. 또 연대의 가치를 “개인들이나 집단들 사이의 삶의 질 격차가 줄어들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복지국가의 연대임금정책 대신 “노동자들 내부의 지식격차 또는 숙련격차를 줄이는 연대지식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생태 가치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런 기본 가치를 전제로 한 뒤 ‘신뢰 구축을 위한 새 진보의 준칙’으로 △이념에서 출발하지 말고 실생활에서 출발하자 △이상주의와 근본주의에 빠지지 말자 △국민의 평균적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을 제시하지 말자 △반시장경제·반기업 이미지를 탈각하자 △민주주의라는 단일 차원으로 사고하지 말자 △민족주의의 틀에 갇히지 말자 △국가안보를 중시하자 △북한 주민의 인권 보장을 요구하자 △노동의 권리와 윤리를 함께 주장하자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타협을 지향하자 등 열 가지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결론에서 ‘사람 중심의 위대한 대한민국 건설’이 2008년의 시대정신이라고 진단하면서 앞에서 제시한 열 가지 준칙에 입각해야 통일한국·분권한국·글로벌 한국을 실현하고 창조경제·협력경제·청정경제 중심의 선진경제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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