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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재닛 플래너의 칼럼 통해 ‘좌안 여성들’ 세상밖으로

등록 2008-04-04 23:08

재닛 플래너의 칼럼 통해 ‘좌안 여성들’ 세상밖으로
재닛 플래너의 칼럼 통해 ‘좌안 여성들’ 세상밖으로
‘좌안 여성들’은 남성 지배 역사의 마모력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콜레트, 실비아 비치 등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세월의 풍마우세를 견디지 못하고 존재의 흔적마저 희미하게 지워져 갔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난 한 시절 센 강 좌안을 풍미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게 된 데는 <뉴요커>에 격주로 연재된 재닛 플래너의 칼럼 ‘파리에서 온 편지’ 덕이 컸다.

노년의 그는 뉴욕에서 열린 한 문학인 모임에서 연설을 통해 “저는 글쓰기에서 미천한 계급을 대표합니다. 저는 기자일 뿐이에요”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파리는 여자였다>의 지은이 말로는, “재닛 플래너는 아마도 레프트뱅크(좌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였다.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재닛은 자신의 영향력을 특히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데 쏟았다. <율리시스>의 출판을 둘러싼 제임스 조이스와 실비아 비치의 관계를 두고 재닛은 이렇게 썼다: “실비아는 비범한 작가의 천재성과 이기심의 엄청난 무게를 짊어지고 마치 마소처럼 고군분투했다.” 만 레이의 조수 출신인 사진작가 베러니스 애벗의 초상 사진에 대한 평은 이러했다: “허위의 빛들, 거짓되고 자극적인 것들은 애벗 씨의 분야가 아니다. 거의 우연적으로, 그리고 무심하게 그녀는 대상의 포즈에 도달해서는 민감한 금속판에 정신과 물질을 균형 있게 표현한다.” 이 밖에도 재닛은 거트루드의 <길 잃은 세대를 위하여>의 출간을 알렸고, 또 다른 부유한 상속녀 낸시 큐나드가 아방가르드 출판사 ‘아워스 프레스’를 설립한 사실을 보도했으며, 심지어 세기의 첩자로 알려진 마타 하리가 총살당할 때 알몸에 밍크코트만 걸치고 있었다는 ‘전설’과 달리 “그날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아마존 스타일의 깔끔한 맞춤 양복을 입고, 새 흰 장갑을 낀 채 죽었다”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양질의 기사와 칼럼은 재닛이 좌안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동료 여성 예술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재닛은 스스로 “나는 미국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예술과 미를 찾기 위해 (파리에) 왔다”고 말할 정도로 낭만주의적이고 예술 지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리 패션에 관한 기사에서 의류산업의 여성 노동자 착취 문제를 건드리는가 하면, 파시즘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 1930년대 이후에는 주로 정치와 국제정세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이와 관련해 재닛은 “예술은 평화의 산물”이라며, 전쟁의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피카소의 청색시대에 대한 호오와 프루스트 소설의 부르주아적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한때 자신이 소설을 쓰던 카페 되 마고의 단골 좌석에서 헤밍웨이와 함께 전쟁 특파원 복장으로 찍힌 재닛의 사진은 예술과 언론에 관한 그의 이런 생각을 말없이 웅변하는 듯하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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