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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 이야기꾼이 되다

등록 2008-04-18 19:07수정 2008-04-18 19:10

〈그는 걸어서 온다〉
〈그는 걸어서 온다〉
〈그는 걸어서 온다〉
윤제림 지음/문학동네·7500원

윤제림(49)씨의 새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에는 이야기가 있다. 시인은 풍경의 묘사나 정서 및 사상의 표출보다는 이야기의 발견과 전개를 통해 시를 구축하곤 한다. 윤제림씨의 ‘이야기’들은 방만하게 늘어지는 대신 압축과 생략, 암시와 반전 같은 기법을 통해 시적 긴장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청소당번이 도망갔다./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괜히 왔다 간다.’/ 가래침을 뱉으며/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담임선생도/ 아무 말을 못했다.”(<걸레스님> 전문)

‘괜히 왔다 간다’는 임종게를 남긴 중광 스님이 도망간 청소당번에 비유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허롭게 넘나드는 스님의 임종게에 시인도 유쾌한 비유로 맞장구를 치는 셈이다.

“친구는 어디 두고 혼자 오느냐고/ 여관집 주인이 물으면 나는/(…)/ 금방 함께 있었는데 말도 없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두 번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일란다”(<친구 하나를 버린다>)라며 분개조로 이어지는 이 시는 마지막에 가서야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사이좋게 손 잡고 거닐며 김밥 도시락을 나눠 먹음으로써 주위 친구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는 철수와 영희가 칠순의 노 부부라는 사실을 역시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내는 <철수와 영희> 역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손목> 부분)

“더듬거리는 말투만 아니면 이 땅 여느 아낙네나 다를 바 없는 여자가 웁니다. 안남댁이 웁니다. 월남치마가 웁니다”(<안남댁> 부분)


인용한 시들을 비롯한 여러 시편에서 시인이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에 주목하는 것도 그들의 삶이 내장한 이야기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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