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달 4일 오후 조준웅 특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삼성에 관한 본격 비판서 함게 펴낸 조돈문 교수 인터뷰
보이지 않는 눈의 노동자 감시
사회 전체로 번져 ‘자기 검열’
저자 13명 “자료 너무 없어 고충” 일의 발단은 토론회였다. 2006년 3월, ‘삼성 문제’를 다루는 작은 학술 토론회가 열렸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대안연대회의’ 소속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마련한 자리였다. 토론회에서 발표자, 토론자들이 너나 없이 불평했다. “삼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렇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실증적으로 연구하려 해도 자료가 없습니다.” 토론회 뒷풀이 자리에서 “우리가 시작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삼성에 대한 실증적·체계적 학문 연구를 벌이기로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8년 5월, 그 결실이 나왔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경제학) 등 13명의 학자 및 활동가들이 쓴 17편의 논문을 모아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2만5000원)를 출간했다. 65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삼성에 대한 비판적 학문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해도 무방하다. 삼성은 어떻게 수퍼 재벌이 됐는가, 삼성에는 왜 노동조합이 없는가, <중앙일보>는 어떻게 성장했으며 삼성은 언론을 어떻게 길들이는가, 삼성 노동자들은 어떻
게 ‘삼성맨’이 되는가, 삼성의 이익이 한국 사회에도 유익한가 등 모두 17개의 질문을 던지며 이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 삼성이 자사 노동자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해 ‘원형 감옥’으로 역할하고 있다는 주장이나, 삼성이 사무직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를 구분해 관리하는 노무 방식을 분석한 글 등이 특히 눈에 띈다.
이번 연구와 편집을 이끈 조돈문 교수는 “이 책의 집필을 통해 삼성 연구 인력 13명을 만들어 냈다는 것 또한 큰 성과”라고 말했다.
-마땅한 선행 연구가 없고 관련 자료도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지난 10년간 학자들이 쓴 현대자동차 노사관계나 지배구조 등에 대한 논문이 30~40편에 이른다. 그런데 삼성전자에 대한 비슷한 주제의 논문은 거의 없다. 경영학자들이 삼성의 의뢰를 받아 내놓은 몇몇 논문이 전부다. 현대자동차는 현장 방문, 경영 자료 취재 등이 비교적 쉬운데, 삼성전자에 대해선 이런 접근이 불가능하다. 경영진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노동조합이 없으니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이번에도 비공식적으로 임직원들을 접촉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인 인터뷰만 응하겠다고 나오기도 했다. 학자들의 책임도 대단히 크다. 삼성의 지원을 받아 경영 컨설턴트에 적합한 수준의 연구만 해왔다.
-한국 사회 전체가 삼성이 감시하는 ‘원형 감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원형 감옥에서는 감시자가 피감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그러나 피감자는 감시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늘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감시자가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위한다. ‘감시가 내면화’되는 것이다. 삼성은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노동자의 모든 행위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중간 감시자는 다시 상부에 의해 감시 감독 당한다. 삼성의 노사관계는 이런 ‘원형 감옥’ 모델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 사회 전체로 번졌다. 삼성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정치권, 법조계, 언론계, 관계의 곳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삼성과 관련된 일을 벌일 때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상관 또는 동료가 ‘삼성에서 파견한 감시자’가 아닌지 의심하면서, 삼성의 지침을 내면화하여 자기 검열을 벌이게 된다. 삼성 특검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삼성이 만든 ‘원형 감옥 체제’가 작동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 개혁의 대안으로 ‘이해 당사자 자본주의’를 강조했다.
=삼성은 한국의 시장경제 모델을 대표한다. 소액주주운동이 지배주주에 대한 비판으로 작동할 때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 함의는 제한적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말고도 노동자, 금융기관, 협력업체, 소비자, 지역사회 등이 모두 삼성에 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삼성이 망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소유주가 아니라 노동자와 협력업체와 시민사회다. 이들 이해 당사자가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특검 이후에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삼성은 여전히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회 전체로 번져 ‘자기 검열’
저자 13명 “자료 너무 없어 고충” 일의 발단은 토론회였다. 2006년 3월, ‘삼성 문제’를 다루는 작은 학술 토론회가 열렸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적 대안을 모색하는 ‘대안연대회의’ 소속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마련한 자리였다. 토론회에서 발표자, 토론자들이 너나 없이 불평했다. “삼성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렇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실증적으로 연구하려 해도 자료가 없습니다.” 토론회 뒷풀이 자리에서 “우리가 시작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삼성에 대한 실증적·체계적 학문 연구를 벌이기로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8년 5월, 그 결실이 나왔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경제학) 등 13명의 학자 및 활동가들이 쓴 17편의 논문을 모아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2만5000원)를 출간했다. 65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삼성에 대한 비판적 학문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해도 무방하다. 삼성은 어떻게 수퍼 재벌이 됐는가, 삼성에는 왜 노동조합이 없는가, <중앙일보>는 어떻게 성장했으며 삼성은 언론을 어떻게 길들이는가, 삼성 노동자들은 어떻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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