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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계 미국인의 ‘기지촌 이야기’

등록 2008-07-11 19:27수정 2008-07-11 19:45

〈여우소녀〉
〈여우소녀〉
〈여우소녀〉
노라 옥자 켈러 지음·이선주 옮김/솔출판사·9500원

‘상투적 불행’이라 할지 모른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산골 소녀(덕희)는 해방 후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기지촌에 정착한다. ‘양공주’가 된 소녀는 흑인 병사의 아이(숙이)를 밴다. 엄마의 품을 미군이 독차지한 일상에서 딸은 안온하기 어렵다. 성병에 걸린 엄마가 강제 격리된 사이 딸은 처절하게 굶주린다. 딸도 제 몸을 미군에게 판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짜쭈가 내 첫 남자인 줄 아니? 여덟살 때부터 그랬어. 엄마의 남자친구 중 하나가 나도 함께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숙이가 말하는 제 이력이다.

불행이 불행한 자만 찾는 현실에서 숙명과 의지는 뜻 다른 말이 아니다. 숙이의 단짝 현진마저 성매매로 내몰릴 때 의지와 무관한 삶의 ‘비극’은 극대화한다. “어쨌든 현실에서 우리는 여우소녀같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덕희의 ‘생존의 변’을 어느 독자도 비판하기 어렵다고 옮긴이는 적고 있다.

개인의 의지를 압도하는 ‘거대 의지’, 가령 기지촌 여성에 대한 한미동맹의 조직적 관리나 방관 같은 것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하여 노라 옥자 켈러의 <여우소녀>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구성하는 ‘기승전결’을 통째 보란 듯 펼쳐낸다. 그곳으로 유입되고 몸을 팔기까지 대목대목 질기다 할 만큼 세밀하다.

작가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첫 소설 <종군위안부>로 미국도서상을 받았다. 두 번째 소설에서 미국 독자를 한국의 기지촌으로 안내한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겐 무감함에 대한 경고이고, ‘뻔한 불행’이라 말해서는 안 되는 미국 독자에겐 비로소 현실을 알려주고 고통을 나누자는 외침이 된다. 한국의 기지촌은 이제 동남아 여성으로 채워지며 제2의 윤금이, 또다른 숙이를 잉태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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