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2일 청와대 세종홀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위촉식 및 제1차 회의에서 현승종 위원장의 인사말을 이명박 대통령과 위원들이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건국 60주년론’ 문제 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5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은 민관 합동의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1차 회의를 청와대에서 주재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건국 60년 행사가 …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비전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정부의 중요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달 뒤인 지난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가 학술회의를 열었다.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이다’를 주제로 내건 ‘대한민국 건국 89주년 학술회의’였다. ‘건국’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갑자기 ‘건국’이 쟁점이 된 걸까?
이 대통령, 힘실어주기…“몰역사” 비판 증폭
임시정부 법통·좌파 부정 ‘이념적 의도’ 의혹
2006년 8월1일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경제학)가 썼다. “해마다 반복되는 광복절의 기념식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리는 국민적 기억은 없다. … 내후년이면 대한민국이 새 갑자를 맞는다. 그해에 들어서는 새 정부는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60년 건국사를 존중하는 인사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그해부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 그의 기대대로 2008년의 광복절은 건국절로 기념되고 있다.
‘건국절’에 대한 강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조선일보>는 1995년 1월부터 ‘거대한 생애 이승만’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65차례에 걸쳐 실었다. 그해 12월28일, 연재 기사의 마지막 편에 이런 대목이 있다. “1948년 8월15일은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다. 자신의 건국기념일을 정부에서조차 제대로 기념하지 않는 나라! 이게 1995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사실상 담론의 무대에서 사라졌던 이승만이 이때부터 재등장했다. <월간조선>, <신동아> 등도 이승만의 생애를 돌아보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뉴라이트 운동은 90년대 중반의 ‘이승만 재해석’을 다시 불러들였다. 2003년 8월15일, 북핵저지시민연대·자유시민연대·민주참여네티즌연대 등은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를 열었다. 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8월15일을 ‘건국일’로 기념한 첫 번째 공식행사였다. 이때부터 보수계열의 단체들이 8월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일’로 기리는 행사를 주도했다. 이후 이승만 재평가와 건국일 기념은 짝을 이뤄 하나의 담론을 형성했다. 여기에는 ‘좌파’에 대한 강력한 경계가 담겨 있었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법학)는 2007년 8월16일 <문화일보>에 ‘광복 62년, 자유민주주의 건국 59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절체절명의 그 시기,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참주의 공산 정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울 봉건적 공산주의자인 김일성 집단을 물리친다. … 비록 ‘남한지역’에 한정됐지만,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삼는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이 탄생한 것이다. … 그러니 광복절만의 국경일은 반쪽이다. 광복절이자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
이런 흐름은 2007년 11월 민간 차원의 ‘건국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으로 이어진다. 보수 계열의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공동위원장 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 집행위원장인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학자다. 이철승 헌정회 회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손진 건국회 회장 등이 고문을 맡았고,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이각범 전 청와대 수석, 이석연 변호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 등이 추진위원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이 위원회를 기초삼아 민관합동기구를 재구성했다. 지난 4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건국 60년 기념사업단’이 출범했다. 이때부터 부처별로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준비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관련 행사의 추진을 의욕적으로 지시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건국 60년 행사에 대해 학계가 ‘현기증’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충분한 공감대 없이 특정 학자 집단 및 보수세력의 주장에 기대 대대적인 정부 행사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민간이 치른다면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건국 60년’을 내걸고 기념행사를 한다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의 시점에 대한 역사학계의 광범위한 공론과 합의부터 이뤄가자는 이야기다. 이는 1919년에 이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국체로 선포하고 입법·사법·행정의 3부 기관까지 구성했던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30년’을 공식 연호로 썼다. 임시정부 때부터 이미 대한민국의 ‘국가적 실체’가 만들어졌다고 본 것이다. 8월15일에서 광복보다 건국의 의미를 강조하고, 건국의 시점을 1948년으로 못박으려는 공세적 노력 뒤에는 임시정부의 법통은 물론 민족좌파 및 사회주의계열을 부정하려는 이념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따라붙는다. 조광 고려대 교수(한국사)는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는 건국과 정부수립을 그때그때 병행하여 사용해 왔고, 이를 구분하여 개념 짓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봤다”며 “‘건국’이란 단어 자체를 자신들이 새로 발견한 것처럼 과도하게 주장하는 이면에 혹시 ‘색깔 논쟁’을 역사 연구에까지 끌어들이려는 뜻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건국’의 기준을 학문적으로 정의 내리는 일의 복잡함도 설명했다. 입법·사법·행정의 국가조직 성립을 기준으로 삼을지, 국민·주권·영토의 실체적 생성을 기준으로 삼을지의 문제다. 계간 <역사비평>은 여름호에서 ‘이승만과 제1공화국’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분단의 책임자 또는 건국 지도자 등으로 양극화된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48년 8월15일이 분단의 시작인지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인지의 대립항을 넘어서자는 제안이다. ‘건국’을 놓고 최근 벌어지는 일들이 그런 대립을 더 격화시키는 게 아닌지, 학계의 염려가 크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임시정부 법통·좌파 부정 ‘이념적 의도’ 의혹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흐름은 2007년 11월 민간 차원의 ‘건국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으로 이어진다. 보수 계열의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공동위원장 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 집행위원장인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학자다. 이철승 헌정회 회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 손진 건국회 회장 등이 고문을 맡았고,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이각범 전 청와대 수석, 이석연 변호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 등이 추진위원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이 위원회를 기초삼아 민관합동기구를 재구성했다. 지난 4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건국 60년 기념사업단’이 출범했다. 이때부터 부처별로 건국 60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준비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관련 행사의 추진을 의욕적으로 지시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건국 60년 행사에 대해 학계가 ‘현기증’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충분한 공감대 없이 특정 학자 집단 및 보수세력의 주장에 기대 대대적인 정부 행사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민간이 치른다면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건국 60년’을 내걸고 기념행사를 한다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의 시점에 대한 역사학계의 광범위한 공론과 합의부터 이뤄가자는 이야기다. 이는 1919년에 이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국체로 선포하고 입법·사법·행정의 3부 기관까지 구성했던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대한민국 30년’을 공식 연호로 썼다. 임시정부 때부터 이미 대한민국의 ‘국가적 실체’가 만들어졌다고 본 것이다. 8월15일에서 광복보다 건국의 의미를 강조하고, 건국의 시점을 1948년으로 못박으려는 공세적 노력 뒤에는 임시정부의 법통은 물론 민족좌파 및 사회주의계열을 부정하려는 이념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따라붙는다. 조광 고려대 교수(한국사)는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는 건국과 정부수립을 그때그때 병행하여 사용해 왔고, 이를 구분하여 개념 짓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봤다”며 “‘건국’이란 단어 자체를 자신들이 새로 발견한 것처럼 과도하게 주장하는 이면에 혹시 ‘색깔 논쟁’을 역사 연구에까지 끌어들이려는 뜻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건국’의 기준을 학문적으로 정의 내리는 일의 복잡함도 설명했다. 입법·사법·행정의 국가조직 성립을 기준으로 삼을지, 국민·주권·영토의 실체적 생성을 기준으로 삼을지의 문제다. 계간 <역사비평>은 여름호에서 ‘이승만과 제1공화국’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분단의 책임자 또는 건국 지도자 등으로 양극화된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48년 8월15일이 분단의 시작인지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인지의 대립항을 넘어서자는 제안이다. ‘건국’을 놓고 최근 벌어지는 일들이 그런 대립을 더 격화시키는 게 아닌지, 학계의 염려가 크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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