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이 28일 ‘유럽과 동아시아의 공동교과서 편찬과 전망’을 주제로 마련한 학술세미나에서 한운석 고려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동역사교과서’ 학술세미나
해석 다를 땐 차이 함께 실어
“정치인들 간섭하면 될일도 안돼”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일 역사 갈등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해법에 대한 학계의 인식은 거의 일치한다. 공동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 인식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 모범은 독일-폴란드, 독일-프랑스의 ‘역사 대화’다. 그들이 어떤 궤적을 밟아 오늘의 성취를 이뤘는지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2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재단 대회의실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공동교과서 편찬과 전망’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학자 16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가했다. 세미나에선 독일-폴란드 사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전쟁의 가해자-피해자 관계로 만났고, 이후 영토 갈등을 겪었으며, 두 나라 내부에 국수적 우익 세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깊다는 점에서 한-일 관계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관련 발표를 한 한운석 고려대 교수는 “한-일 공동교과서를 거론할 때 독일-프랑스 모델보다 독일-폴란드 모델이 더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올 1월 두 나라 외무장관은 2011년까지 사상 첫 독일-폴란드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1972년 ‘독-폴 교과서위원회’가 설립된 지 36년 만의 성과다. 30여년 동안 두 나라는 ‘역사·지리 교과서 공동권고안 발표’(1976년), ‘독-폴 청소년 교류원 설립’(1993년), ‘현대사 보조교재 공동 제작’(2007년) 등의 성과를 쌓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 억지로 합의를 모색하기보다는 그 차이를 함께 적어 상대가 역사를 어떻게 달리 이해하는지 알도록” 하는 것을 공동 역사교과서 서술의 목표로 잡았다. 한 교수는 “이런 서술이 역사 화해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 역사 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수적 우익 세력이다. 한 교수는 “2000년대 초반에 독일 우파의 득세, 폴란드의 극우 성향 정부 수립 등으로 역사 교류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됐다”며 “지난해 여름,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폴란드 내각을 구성하면서 공동 역사교과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토론에 나선 김용덕 한국외대 교수는 “폴란드 현 내각의 교육부 차관이 지난 5월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이 작업에 간섭하면 안 된다. 학계의 주도 아래 일을 진전시키려 하니 참아 달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정치권이 역사 대화에 ‘개입’하기보다 ‘후원’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디지만 끈질기게’ 역사 대화를 이어온 사례가 독일-프랑스의 공동 역사교과서 출간이다. 상호 이해를 위한 두 나라 역사학자들의 교류는 1차 대전 직후인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표를 한 김승렬 경상대 교수는 “자국민 중심의 역사교육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이때부터 상대 나라의 교과서를 검토하고 서로 협의하여 ‘다자적 관점’을 역사 서술에 녹이려는 협력을 펼쳤다”고 밝혔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두 나라 학계에는 주요 역사 쟁점 대부분에 공감대가 마련됐다. 2003년 두 나라 외교부·교육부 관료 및 학자로 구성된 ‘독-프 역사교과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 결실인 공동 역사교과서 <역사>가 2006년 여름 출간됐다. “두 나라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유럽의 관점에서 이를 다시 살피고, 평화주의와 다자적 시각을 담은 것이 독-프 공동 역사교과서의 특징”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그동안 민간이 발간한 한-일 공동 역사교재에 대한 평가도 이뤄졌다. 두 나라 역사 교사들이 만든 <마주보는 한일사>(사계절·2006년), 연구자·교육자가 함께 통사 형식으로 한-일 관계사를 서술한 <한일 교류의 역사>(혜안·2007년), 연구자·교육자·시민운동가 등이 한·중·일 역사를 함께 다룬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출판·2005년) 등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2001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켜 현재 활동 중이지만, 세미나 참석자들은 위원회의 정상적 활동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나타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국내 역사학계를 배제하고 ‘뉴라이트’를 준거 삼아 기존 역사서술의 개악을 시도하면서, 막상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국내 사학자들에게 기대려는 이명박 정부의 모순된 행보가 한-일 역사 교류에 혼선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정치인들 간섭하면 될일도 안돼” 독도 문제를 계기로 한-일 역사 갈등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해법에 대한 학계의 인식은 거의 일치한다. 공동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 인식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 모범은 독일-폴란드, 독일-프랑스의 ‘역사 대화’다. 그들이 어떤 궤적을 밟아 오늘의 성취를 이뤘는지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2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재단 대회의실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공동교과서 편찬과 전망’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학자 16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가했다. 세미나에선 독일-폴란드 사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전쟁의 가해자-피해자 관계로 만났고, 이후 영토 갈등을 겪었으며, 두 나라 내부에 국수적 우익 세력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깊다는 점에서 한-일 관계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관련 발표를 한 한운석 고려대 교수는 “한-일 공동교과서를 거론할 때 독일-프랑스 모델보다 독일-폴란드 모델이 더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올 1월 두 나라 외무장관은 2011년까지 사상 첫 독일-폴란드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1972년 ‘독-폴 교과서위원회’가 설립된 지 36년 만의 성과다. 30여년 동안 두 나라는 ‘역사·지리 교과서 공동권고안 발표’(1976년), ‘독-폴 청소년 교류원 설립’(1993년), ‘현대사 보조교재 공동 제작’(2007년) 등의 성과를 쌓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 억지로 합의를 모색하기보다는 그 차이를 함께 적어 상대가 역사를 어떻게 달리 이해하는지 알도록” 하는 것을 공동 역사교과서 서술의 목표로 잡았다. 한 교수는 “이런 서술이 역사 화해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 역사 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수적 우익 세력이다. 한 교수는 “2000년대 초반에 독일 우파의 득세, 폴란드의 극우 성향 정부 수립 등으로 역사 교류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됐다”며 “지난해 여름,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폴란드 내각을 구성하면서 공동 역사교과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토론에 나선 김용덕 한국외대 교수는 “폴란드 현 내각의 교육부 차관이 지난 5월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이 작업에 간섭하면 안 된다. 학계의 주도 아래 일을 진전시키려 하니 참아 달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정치권이 역사 대화에 ‘개입’하기보다 ‘후원’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디지만 끈질기게’ 역사 대화를 이어온 사례가 독일-프랑스의 공동 역사교과서 출간이다. 상호 이해를 위한 두 나라 역사학자들의 교류는 1차 대전 직후인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표를 한 김승렬 경상대 교수는 “자국민 중심의 역사교육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이때부터 상대 나라의 교과서를 검토하고 서로 협의하여 ‘다자적 관점’을 역사 서술에 녹이려는 협력을 펼쳤다”고 밝혔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두 나라 학계에는 주요 역사 쟁점 대부분에 공감대가 마련됐다. 2003년 두 나라 외교부·교육부 관료 및 학자로 구성된 ‘독-프 역사교과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 결실인 공동 역사교과서 <역사>가 2006년 여름 출간됐다. “두 나라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유럽의 관점에서 이를 다시 살피고, 평화주의와 다자적 시각을 담은 것이 독-프 공동 역사교과서의 특징”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그동안 민간이 발간한 한-일 공동 역사교재에 대한 평가도 이뤄졌다. 두 나라 역사 교사들이 만든 <마주보는 한일사>(사계절·2006년), 연구자·교육자가 함께 통사 형식으로 한-일 관계사를 서술한 <한일 교류의 역사>(혜안·2007년), 연구자·교육자·시민운동가 등이 한·중·일 역사를 함께 다룬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출판·2005년) 등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2001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켜 현재 활동 중이지만, 세미나 참석자들은 위원회의 정상적 활동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나타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국내 역사학계를 배제하고 ‘뉴라이트’를 준거 삼아 기존 역사서술의 개악을 시도하면서, 막상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국내 사학자들에게 기대려는 이명박 정부의 모순된 행보가 한-일 역사 교류에 혼선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