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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본의 ‘집단+개인주의’ 어디서 왔나

등록 2008-08-08 19:26수정 2008-08-08 19:39

일본의 ‘집단+개인주의’ 어디서 왔나
일본의 ‘집단+개인주의’ 어디서 왔나
‘사무라이 명예문화’ 탄생과 전개 속
관료의 충성심-무사의 독립성 공존
〈사무라이의 나라〉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남명수 옮김/지식노마드·2만8000원

일본이라는 나라를 표상하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사무라이는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사무라이는 칼이 지닌 잔혹성과 정신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일본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회학자 이케가미 에이코가 쓴 <사무라이의 나라>는 일본의 대표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사무라이를 통해 일본 문화의 모순적 통일성의 기원과 계보를 살핀 역작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순이란 집단성과 개인성의 공존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가 기묘하게 통합된 모습에서 일본 문화의 특성을 찾는다. 이 책은 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모순적 통일을 사무라이 문화의 성장과 변모를 통해 설명한다. 역사사회학적 방법론을 구사해 인간관계의 구조를 공시적으로 조망함과 동시에 사무라이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피는 방대한 연구 작업을 무기로 삼아 지은이는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의 본질로 육박해 들어간다.

지은이가 이 작업을 해나갈 때 열쇳말로 채택한 것이 ‘명예’라는 개념이다. 사무라이의 명예 관념이야말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절묘한 결합의 심성적 아교 노릇을 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사무라이의 출현과 성장과 변화의 과정은 바로 이 명예의 탄생과 전개와 심화의 과정이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심성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할 때 ‘수치’를 열쇳말로 삼았던 것에 이 책의 지은이는 이의를 제기한다. 오히려 수치의 반대말인 명예야말로 일본인의 심성을 잴 수 있는 ‘체온계’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수치 대신 명예를 포착함으로써 일본 문화를 베네딕트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심층적으로 살필 수 있었다고 자신한다.

사무라이는 9세기 헤이안시대에 유랑하는 무장집단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무력으로 농지를 점거해 정착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적 계급을 형성했다. “사무라이란 본디 전문가, 곧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직능집단이었다.” 11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들은 자기 가문을 세습할 정도로 정체성을 확고히 세웠다. 그리고 1세기가 더 지난 뒤 가마쿠라 막부(바쿠후) 시대가 열리면서 지배계급을 이루었으며,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으로 공식적 해체를 당할 때까지 700년 동안 일본 사회의 정치 주체로 군림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으로 근대국가를 형성한 뒤에도 사무라이의 정신은 문화적 근간으로 남아 오늘의 일본 문화를 규정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주체부터가 사무라이 계급이었다.


〈사무라이의 나라〉
〈사무라이의 나라〉
이 책은 사무라이의 명예문화가 성립하는 과정에 ‘소유’와 ‘폭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작동했다고 말한다. 사무라이는 영지를 소유한 무사로서 각자가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영지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마다지 않았다. 이 폭력에서 명예의 관념이 태어났다.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드러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명예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가 서구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의 전통에 이미 굳게 뿌리박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중세 사무라이 명예문화의 중요한 측면은 사회적으로 자립을 이룬 토지 소유 엘리트의 주권통치자적 지위의 표명이었다. 봉건제 토지 소유와 더불어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군사력도 가지고 있던 결과로 사무라이 계급은 그 힘과 독립의 문화적 표현으로서 명예 감정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런 독립의 감정은 신체와 정신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생각, 더 나아가 죽음도 자신이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할복’이라는 사무라이 자살문화도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이 책은 사무라이의 명예 관념을 발전시킨 또 다른 힘으로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이후 확고해진 군신관계를 거론한다. 사무라이들이 주군과 가신으로서 상하관계를 맺을 때, 주군에 대한 충성이 명예의 중요한 준거로 세워졌다. 문제는 봉건적 군신관계라는 것이 일정한 긴장과 갈등을 내장한 관계였다는 점이다. 충성을 바치는 대신 보호를 돌려주는 이 군신관계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면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명예예찬으로 나타났다. 명예 관념이 강화된 것은 사무라이가 완전히 종속된 자도 완전히 독립된 자도 아니라는 이중적 지위에서 비롯한 일이었던 것이다.

사무라이 계급이 큰 정치적 변화를 겪은 것은 17세기 에도 막부가 등장한 뒤였다고 이 책은 말한다. 도쿠가와 시대에 쇼군은 가신들의 사회경제적 독립성을 박탈했다. 사무라이는 마상의 무사에서 충직한 관료로 변신해야 했다. 그런 거대한 변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사무라이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명예 관념’이 더욱 강화됐다. 주군에 대한 충성이야말로 명예로운 일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집요하게 주입해 가신들을 훈육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끈질긴 길들이기 작전 속에서도 사무라이의 원초적 독립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독립정신을 이 책은 ‘명예형 개인주의’라고 규정한다. 정치적 종속과 개인적 독립 사이 긴장과 길항의 결과가 주군의 요구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그것을 최종적으로 받들 것인가 말 것인가는 사무라이 자신의 책임 아래 결단한다는 사고의 강화였다. 그리하여 집단성과 개인성이 기이하게 결합하는 일본 문화의 심층 심성이 굳어졌다고 이 책은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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