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얼굴의 중국사 (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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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부터 달달 외어야 한다면 역사는 지루하다. ‘왕조와 왕권의 몰락’에서 늘 교훈을 끄집어내야 한다면 역사의 틀은 너무 뻔하다. 역사 쓰기와 역사 읽기의 오래된 고민이다.
대만의 작가이자 역사학자 바이양(백양·86)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9년 하고도 26일”(1968~77년) 동안 중국역사서 ‘25사’와 <자치통감>에 의지해 썼다는 <맨얼굴의 중국사>(전 5권, 창해 펴냄)는 역사 쓰기의 새로운 시도다. 수많은 세력의 상호쟁투와 이합집산, 그리고 그 바탕을 이루는 민중 삶의 기록인 장구한 중국통사에서 그럴듯한 ‘화장기’는 쏙 빼고 ‘맨얼굴의 역사’라는 다른 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태조’ ‘고조’ ‘세종’ 등 제왕의 시호들 대신에 제왕의 본명을 되살려 쓴다. 진시황은 ‘영정’이 되고, 당 태종은 ‘이세민’, 명 신종은 ‘주익균’으로 불려 나온다. 제왕들이 만들어 썼던 연호는 아예 사라졌다. 게다가 고대·중세·근대 등 시대나 왕조별로 역사 이야기의 장을 나누는 대신에 자연의 시간을 따라 1세기별로 각 장을 구성했다.
이런 색다른 구성과 서술은 83개 나라에 559명의 제왕이 등장했던 중국사에 누가 ‘정통’의 지위에 오르고 누가 그렇지 못한가를 지금 판단할 수 없다는 지은이의 뜻을 담은 것이다. 또 “강도와 악질 망나니적 성분을 한 몸에 지닌 주전충(양나라 태조) 같은 무리들”의 연호와 왕권을 왜 정통 역사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성공하면 제왕이요, 실패하면 도적”이라는 사관에 대한 ‘맨얼굴’의 반문이다.
이런 형식은 한족 중심주의나 애국주의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독자들한테 중국 땅덩어리의 역사무대에서 출몰했던 등장인물의 흥망성쇠를 ‘관조’하며 지금의 시각에서 그 반인권·반인간적 모습을 드러내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는 제1권에서 100여 쪽에 걸쳐 중국의 “역사무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시도한다. 가상의 “우주선을 타고서” 내려다보며, “말을 타고” 달리며 중국이라는 역사무대의 장치들, 예컨대 만리장성과 산·강과 요충지 등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이어 한족과 만주·몽골·회·장·묘족 등 “배우들”은 주연과 조연의 차별 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중국사의 대하 정치 드라마를 시작한다. “자, 준비됐나요? 드라마 시작됩니다!” 이런 식이다.
83개나라 제왕 559명…시호 대신 본명 되살려
연호도 없애고 세기별로 각 장 구성
“성공하면 제왕이요, 실패하면 도적?” 반문
저자 ‘아웃사이더’로서 이야기하듯 ‘역사’ 풀어내
다섯 권에 나뉘어 펼쳐지는 이 책의 중국사는 강의하듯 이야기처럼 풀어내는 ‘이야기 중국사’다. 중국인과 중국이 역사무대에 등장하는 기원전 5세기까지, 황금시대를 구가한 춘추와 전국시대를 거쳐 진과 한에 의해 통일을 이루어 ‘통일 중국’이 끊임없는 역사의 지향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기원후 4세기까지, 대분열 시기 이후에 수와 당을 거쳐 북방에선 요가 천하를 잡아 이민족 소분열의 시대에 접어든 10세기까지, 거란(요)·여진(금)·몽골(원)이 큰 세력을 이루고 다시 한족이 명을 세웠던 16세기까지, 그리고 만주족의 청 제국이 등장해 제국의 위세가 등등해지나 결국 ‘서세동점’의 운명에 빠져든 20세기까지, 중국사는 빠르게 전개된다.
역사의 중요한 대목마다 지은이는 “아웃사이더”로서 끼어들기를 감행한다. 역사에 대한 일종의 ‘댓글’이다. “마치 재미난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이것이 26년만의 조회 모습이었다. 국가 대사에 관해서는 한마디 없었고, 신하들이 가장 강렬하게 받은 인상이라곤 황제가 위세를 부리며 내뱉었던 ‘끌어내라!’는 한마디였다. 주익균(신종)은 이로부터 다시 5년 동안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자옥’(文字獄)이라는 사상 탄압(의)…심리적 배경을 보면 아주 단순하다. 권력을 쥔 자의 내면에 죄의식과 자괴감 같은 것이 잠재되어 있고 그 부끄러운 모습을 스스로 돌이켜본 나머지 다른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에도 수치와 분노를 느끼고…주원장은 늘 자신이 왕년에 좀도둑 노릇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늘 자신의 약점을 들춘다고 여겼고…거의 모든 문자옥이 권력자의 신경쇠약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식의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의 중국사 이야기가 ‘중화사상’을 완전히 탈색한 것도 아니며 ‘아웃사이더’의 서투름도 더러 드러내지만, 그가 감옥 안에서 쓴 역사의 재구성은 우리한테도 역사 쓰기의 또다른 본보기를 보여준다. 옮긴이인 중국사학자 김영수(46)씨는 자신이 찍은 사진 60여점을 추가했으며 따로 왕조연표를 정리해 별책으로 내놓았다(황제들의 사망 원인에 ‘피살’이 이토록 많았음이 드러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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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도 없애고 세기별로 각 장 구성
“성공하면 제왕이요, 실패하면 도적?” 반문
저자 ‘아웃사이더’로서 이야기하듯 ‘역사’ 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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