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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로돕기와 연대는 만물의 자연법칙

등록 2005-04-29 18:39수정 2005-04-29 18:39

 만물은 서로 돕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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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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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궁한 자들끼리 서로 돕고 연대함’은 19세기 말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운동의 지도자 크로포트킨의 중요한 사상적 뿌리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은 본디 선하다는 ‘성선설’이나 그런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 같은 도덕과 윤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상호부조(서로 돕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만물의 자연법칙’이라며 ‘과학’을 내세운다.

지리·동물학자이기도 한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이 ‘개체들의 경쟁과 전쟁이 진화의 동력’이라는 ‘왜곡된 다윈주의’의 신념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상호부조 역시 진화의 중요한 동력임을 입증하는 1902년 작 <만물은 서로 돕는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의 비판은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윤리학이나 철학과는 분명하게 거리를 두면서 ‘~라는 사실이 관찰됐다’는 당시 생물학의 연구성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진화론을 풍부하게 해주는 과학도서이면서도 상호부조와 평화를 좇는 아나키즘 사상에 생물학적 기초를 부여한 명저로 평가받는다.

그가 ‘허구’라고 지목하는 바는 다윈의 진화론 자체가 아니다. 다윈주의의 추종자들이 다윈의 이론을 축소해 강화시킨 도그마, 즉 ‘생물 종들 사이뿐 아니라, 같은 종의 개체들끼리 벌이는 치열한 생존투쟁도 자연의 법칙이며 진화의 동인’이라는 신념이다. “다윈의 추종자들은…(다윈) 이론의 폭을 더욱 좁혀놓았다.…그들은 동물의 세계를 반쯤 굶어 서로 피에 주린 개체들이 벌이는 끝없는 투쟁의 세계로 여기게 되었다.…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무자비한’ 투쟁을 인간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생물학 원리로까지 끌어올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주의를 닮은 이런 도그마는 당연히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사상에 봉사했다.

그러나 크로포트킨이 숲이나 목초지, 또 산악에서 직접 관찰한 바는 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양한 종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관찰되지만, 이와 함께 같은 종·집단에 속한 동물종에선 경쟁보다는 협력과 지원이 훨씬 더 흔하게 관찰됐다. 상호부조는 동물종이 진화를 거치며 그 몸 속 깊은 곳에 새긴 ‘자연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 사례는 이 책 안에서 무궁무진하게, 지칠 줄 모르게 제시된다.

자연계 경쟁보다 협력이 우세
적자생존론 조목조목 비판
상호부조가 진화의 동력
아나키즘 사상 토대 마련


동료가 먹이를 달라고 요청하면 입에 머금고 있던 먹이를 게워내어 주는 개미, 바다로 나아가 알을 낳으려 할 때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서로 제휴하고 협동하는 서인도 제도 참게, 상호지원의 사회성이 특히나 발달한 꿀벌, 몇 시간 동안 갇힌 동료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몰루카 게들의 감동적 협력과 연대! 솔개, 황조롱이, 도요새, 앵무새들의 행동에서도 서로 먹이를 빼앗는 ‘치사한’ 일은 거의 발견할 수 없다.

크로포트킨의 주장은 인간 사회로도 이어진다. 구석기·신석기 유적에 나타난 협력의 증거들, 근대 서구가 이름 붙인 야만인과 미개인들 사이에 나타나는 자기희생과 연대,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멸한 게 아니라 오히려 끈질기게 이어졌던 중세적 촌락공동체, 그리고 가난과 곤궁 속에서 이룬 노동자 개체들의 연대와 협력은 인간사회에서도 상호부조와 연대는 부정할 수 없는 자연법칙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그는 “상호부조야말로 상호투쟁과 맞먹을 정도로 동물계를 지배하는 법칙”이라며 “아니, 진화의 한 요인인 상호부조는 어떤 개체가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주기에 더욱 중요한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가 ‘자연’에서 출발해 ‘인간’에서 다시 확인하는 과학적 연대 사상의 원리는 이렇다. “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서 만들어낸 상호증오와 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 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연대감이란 앞선 진화과정 속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만물이 좇는 상호부조와 연대의 ‘본능’을 인간만은 왜 애써 ‘의지’로써 거부하는 것일까, 그게 보편 법칙일까, 그가 내내 묻고 있는 바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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