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 날 공개된 4,776명의 명단 중 카톨릭계 인사 7명이 포함되었다.
노기남 대주교·경향잡지 행태 고발
더 늦기 전 역사 앞에 고해성사해야
더 늦기 전 역사 앞에 고해성사해야
〈깨물지 못한 혀〉
김유철 지음/우리신학연구소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4776명의 ‘친일파’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종교단체 인사는 202명이었으며 가톨릭계로 분류된 이가 7명이었다. 이튿날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친일인사로 발표된 가톨릭 인사들이 어떤 해를 끼쳤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가톨릭계 교회신문들은 일제히 성명을 지지하고 명단 공개 과정이 “반쪽자리” “피상적”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교회 쪽의 반발 앞에 불과 8년 전 그들이 내놓은 반성인 ‘쇄신과 화해’의 문장들은 ‘벙어리’가 돼 버린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유감과 반성 사이 깊은 골처럼, 광복 60여년이 지난 오늘도 교회 첨탑에 드리운 ‘친일의 그늘’은 어두운 것이다. 솔직하게, 겸손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무슨 죄인지 명확히 ….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에 대한 교회의 지침이다. 한국 천주교는 자신의 ‘죄과’에 대해 과연 그리했는가. 이 물음을 들고 정면으로 “아니다”라고 말하는, 아니 말해야 하는, 아니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픈 마음으로 아프게 쓴 글’을 내놨다. 부제 ‘한국 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 언론’에서 보이듯, 책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에 눈감고 민중을 욕됨의 자리로 선동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바빴던 천주교 친일인사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천주교 ‘지도부’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교회에서 발간했던 신문·잡지의 부화뇌동 행각을 낱낱이 드러내며 참회를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 그 자신 천주교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지은이는 가톨릭 청년운동에 몰두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글을 여러 매체에 쓰고 있으며, 이 책이 첫 결과물인 셈이다.
지은이가 꼽은 문제적 인물은 노기남(1902~1984) 대주교이며, 문제적 언론은 천주교의 공식 기관지인 <경향잡지>다.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자 불과 반년에 비율빈(필리핀), 말래반도, 비르마니아지에서 적군의 그림자까지 없애는 동시 태평양 인도양을 제압하고 있는 것은 일찍이 인류의 전쟁역사에 볼 수 없는 위대한 사실 (…) 무엇보다도 당국에서 지도하는 바에 무언 복종할 것이오, 복종할지라도 마지못하여 하거나 겉으로 하는 체만 하거나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하여 나갈지니 …” 1942년 당시 오카모토 경성교구장이 <경향잡지>에 실은 담화문 일부이며, 오카모토는 노기남 대주교의 창씨명이다. 지은이는 묻는다. “경성교구장의 담화문이 ‘추상적이고, 소극적인’ 친일 행각인가?”
책의 2부에서 지은이가 소개하는 <경향잡지>의 ‘받아쓰기’ 사례는 우리 민족의 ‘혼불’을 앗긴 시대에 영합해 교회를 지키려는 노력이 어떻게 왜곡·굴절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신사참배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종교예식이 아니므로 ‘해도 무방하다’는 궤변, 일본 메이지 천황의 죽음(1912)이 국상이며 주일마다 성경을 암송하고 경문을 외우라는 지시,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뒤 황군의 승전을 위한 기도회를 올리고 위문금을 모아 보냈다는 선전, 국가(일본)를 위해 적군의 손에 죽는 것은 충신이요 ‘순교’라는 설교, 반도청년이 황군에 입대하면 완전한 황국신민의 자격을 갖춘다며 징병을 거들고 …. 이와 같은 일들의 종결점이 1940년 결성된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이었으니, 초대 이사장이 앞서 든 노기남 신부였으며, 그는 2년 뒤 주교로 승품됐다.
지은이는 이렇게 믿는다. “일제 강점기 한국천주교회의 허물은 ‘교회’의 허물이 아니라 ‘사람’의 과오였다.” 역사의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민족에게 사죄하자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그 방법은 이렇다. “한 번이 아니라 두고두고 … 해방절이 올 때마다 … 경술국치일을 맞으면 그때마다 … 사람들이 그만이라고 말해도 재를 쓰고 … ” 책값은 무료이며 우리신학연구소 후원회 카페(cafe.daum.net/wtisarang)에 신청하면 받아 볼 수 있다.
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
김유철 지음/우리신학연구소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4776명의 ‘친일파’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종교단체 인사는 202명이었으며 가톨릭계로 분류된 이가 7명이었다. 이튿날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친일인사로 발표된 가톨릭 인사들이 어떤 해를 끼쳤는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어 가톨릭계 교회신문들은 일제히 성명을 지지하고 명단 공개 과정이 “반쪽자리” “피상적”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교회 쪽의 반발 앞에 불과 8년 전 그들이 내놓은 반성인 ‘쇄신과 화해’의 문장들은 ‘벙어리’가 돼 버린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유감과 반성 사이 깊은 골처럼, 광복 60여년이 지난 오늘도 교회 첨탑에 드리운 ‘친일의 그늘’은 어두운 것이다. 솔직하게, 겸손하게, 똑똑한 발음으로, 무슨 죄인지 명확히 ….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에 대한 교회의 지침이다. 한국 천주교는 자신의 ‘죄과’에 대해 과연 그리했는가. 이 물음을 들고 정면으로 “아니다”라고 말하는, 아니 말해야 하는, 아니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픈 마음으로 아프게 쓴 글’을 내놨다. 부제 ‘한국 천주교회의 원죄 그리고 교회 언론’에서 보이듯, 책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에 눈감고 민중을 욕됨의 자리로 선동하며 기득권 지키기에 바빴던 천주교 친일인사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 천주교 ‘지도부’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교회에서 발간했던 신문·잡지의 부화뇌동 행각을 낱낱이 드러내며 참회를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 그 자신 천주교 수도자의 길을 걸었던 지은이는 가톨릭 청년운동에 몰두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글을 여러 매체에 쓰고 있으며, 이 책이 첫 결과물인 셈이다.
〈깨물지 못한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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