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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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코맥 매카시는 코언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열 번째 소설인 <로드>는 미국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2007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인터넷서점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뉴스위크>는 “매카시의 모든 작품 중 정점에 올라 있는 작품”이라고 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묵시록적인 걸작”이라고 평했으며, <에이피통신>은 “아름답고 강렬한 문장”을 상찬했다. 문학동네 출판사는 이 소설에 쏟아진 이 모든 찬사를 총동원하고,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이라는 카피를 앞세워 한국 독자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지난 6월 국내에 출간된 이 소설은 지금까지 10만부 가량 팔렸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하는 주간 베스트셀러 8위에 오르기도 했다. 책을 편집한 이현자 문학동네 해외문학팀장은 “지난해 말에 출간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국내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볍고 쉬운 책만이 아니라 진지하고 문학성 높은 외국 소설도 국내 독자들에게 충분히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진지함 자체를 상품화하자는 계산을 한 것인데, 시장이 의도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셈이다. “그 무렵 비축해두었던 식량은 모두 바닥이 났고 온 땅에 살인이 만연했다. 세상은 곧 부모 눈앞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도시 전체를 시커먼 약탈자들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약탈자들은 폐허에서 굴을 뚫고 돌아다니다 잡석 더미에서 눈과 이만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는 대로 <로드>가 보여주는 세계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세계보다 훨씬 더 암울하다. 끝없는 어둠과 절망이 광대한 사막처럼 펼쳐져 있다. 기독교 <성서>의 묵시록과 창세기를 혼합해 암회색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 세계다. 모든 생명체가 죽고 오직 소수의 인간 생존자만이 목숨을 지키려 분투한다. 멸망 이후의 자연상태 혹은 전쟁상태가 이 소설이 그려보여주는 세계다. 주인공 남자와 어린 아들은 그 황폐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간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참혹한 세계에서 아이는 생존자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둘로 나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요.” 야수의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간성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이 소설을 밀고가는 힘이다. 9·11 사건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날 지은이는 노인이 되어 얻은 어린 아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이런 가혹한 상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소설의 ‘길’은 끝이 없는 절망의 외길이지만, 지은이는 그 암흑 속에서도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희망의 불빛을 찾아내려 한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못 가요.”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디 있죠?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코맥 매카시는 코언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열 번째 소설인 <로드>는 미국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2007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인터넷서점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뉴스위크>는 “매카시의 모든 작품 중 정점에 올라 있는 작품”이라고 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묵시록적인 걸작”이라고 평했으며, <에이피통신>은 “아름답고 강렬한 문장”을 상찬했다. 문학동네 출판사는 이 소설에 쏟아진 이 모든 찬사를 총동원하고,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이라는 카피를 앞세워 한국 독자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지난 6월 국내에 출간된 이 소설은 지금까지 10만부 가량 팔렸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하는 주간 베스트셀러 8위에 오르기도 했다. 책을 편집한 이현자 문학동네 해외문학팀장은 “지난해 말에 출간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국내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서, 가볍고 쉬운 책만이 아니라 진지하고 문학성 높은 외국 소설도 국내 독자들에게 충분히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진지함 자체를 상품화하자는 계산을 한 것인데, 시장이 의도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셈이다. “그 무렵 비축해두었던 식량은 모두 바닥이 났고 온 땅에 살인이 만연했다. 세상은 곧 부모 눈앞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도시 전체를 시커먼 약탈자들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약탈자들은 폐허에서 굴을 뚫고 돌아다니다 잡석 더미에서 눈과 이만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는 대로 <로드>가 보여주는 세계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세계보다 훨씬 더 암울하다. 끝없는 어둠과 절망이 광대한 사막처럼 펼쳐져 있다. 기독교 <성서>의 묵시록과 창세기를 혼합해 암회색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 세계다. 모든 생명체가 죽고 오직 소수의 인간 생존자만이 목숨을 지키려 분투한다. 멸망 이후의 자연상태 혹은 전쟁상태가 이 소설이 그려보여주는 세계다. 주인공 남자와 어린 아들은 그 황폐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간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참혹한 세계에서 아이는 생존자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둘로 나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요.” 야수의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간성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이 소설을 밀고가는 힘이다. 9·11 사건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날 지은이는 노인이 되어 얻은 어린 아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이런 가혹한 상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소설의 ‘길’은 끝이 없는 절망의 외길이지만, 지은이는 그 암흑 속에서도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희망의 불빛을 찾아내려 한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못 가요.”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디 있죠?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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