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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돈으로 산 권력이 정말 즐거울까

등록 2008-08-29 20:21

〈부르주아의 지배〉
〈부르주아의 지배〉
강제적으로 타자를 내 것 만드는
자본가와 동맹자들의 지배 욕망
사랑 없는 자기기만의 향유일 뿐
〈부르주아의 지배〉
이종영 지음/새물결·2만1000원

정치사회학자 이종영(파리8대학 박사)씨가 새 연구서 <부르주아의 지배>를 내놓았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결합해 우리 시대의 지배체제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는 것이 그의 주요한 연구 작업이다. 선행 연구로 그는 <지배와 그 양식들>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 <내면성의 형식들> <사랑에서 악으로> <정치와 반정치>로 이루어진 ‘이행’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이번 책 <부르주아의 지배>는 이 선행 연구들의 성과에 기초해 부르주아 체제의 지배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논리를 펼치기에 앞서 지은이는 부르주아 또는 부르주아계급을 먼저 명확하게 규정한다. 부르주아계급은 자본가계급과 그 동맹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동맹자’들은 흔히 ‘신중간계급’으로 분류되는 집단의 핵심 부분을 가리킨다.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지배 기능을 위임받아 대행하는 하위 파트너가 이 동맹자들이다.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집행하는 자본가계급과 동맹자집단이 부르주아계급을 이룬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부르주아체제는 이 부르주아계급의 지배가 관철되는 사회구성체다. 이때 관건이 되는 문제가 ‘지배’다. 이 지배의 원천을 밝히고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효과를 규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부르주아는 왜 지배하는가. 결론을 먼저 말하면, ‘지배를 향유하는 것’이 지배의 이유다. 지배의 향유는 좀더 구체적인 차원에서는 ‘권력의 향유’로 나타난다. 권력의 향유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획득해야 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지은이는 권력 욕망의 강도를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맨 앞에 나오는 ‘이탈리아 네미 마을 성소의 사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성소의 사제는 왕이라 불리는데, 그 사제직은 현재의 사제를 살해한 자에게 계승된다. 프레이저는 이렇게 쓴다. “그는 불안스런 밤을 새워야 하며 혹은 무서운 악몽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하다가는 잠자리에서 목숨을 빼앗기는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치명적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사제직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 이것은 권력 향유의 강렬함을 말해줄 뿐이다.”


조르주 그로츠 ‘유산자 놈들’, 강도를을 위한 데생. 1992년.
조르주 그로츠 ‘유산자 놈들’, 강도를을 위한 데생. 1992년.
그렇다면 권력 향유, 다시 말해 지배 향유에 대한 욕망의 원천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여기서 지배의 욕망이 사랑의 욕망을 닮았음을 강조한다. 지배나 사랑이나 모두 타자를 자기에게 복속시켜 자기의 일부로 만들기를 욕망한다. 그러나 사랑과 지배는 그 전개양상이 전혀 다르다. 사랑은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자유를 헌납함으로써 상대에게 복속하는 상호적 관계다. 서로 복속함으로써 자유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사랑이다. 반면에 지배는 상대를 자신의 힘 아래 두는 것이다. 타자의 의지에 반해 타자를 강제로 자기에게 복속시키는 것이 지배다. 지배는 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기애(나르시시즘)적 욕망을 충족하려 하지만, 결국엔 ‘사랑의 결여’만을 보여준다.

부르주아 체제의 특징은 화폐(돈)를 매개로 삼아 이 지배를 관철한다는 데 있다. 화폐가 지배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전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지배가 화폐를 획득하게 해주었다. 또 화폐는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었을 뿐, 지배의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에서는 화폐를 먼저 획득한 뒤 이 화폐의 힘으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타자를 굴복시키고 지배체제를 완성한다. 이 책은 화폐가 정치를 장악해 부르주아 체제를 성립시키는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그런 메커니즘을 거쳐 부르주아는 ‘지배의 향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 향유는 다수의 자존과 자립을 희생시킨 소수만의 향유이다. 더구나 그 향유는 사랑의 향유를 목표로 삼지만,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사이비 향유, 자기기만적 향유로 끝난다. 지은이는 여기서 부르주아적 지배 향유를 넘어선 보편적 향유의 양식을 제시한다. 비부르주아적 자유인들의 자립성과 연대성, 그리고 친밀성에 기반을 둔 코뮌적 향유를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기존의 학설을 수정하거나 뒤집고 있는데, 이 점도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급진적 대안운동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지평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스피노자의 논리를 지은이는 가치없이 부정한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실체(신)의 인식에 따른 능동적 기쁨을 강조하고 양태들 사이의 관계(인간 관계)에 따른 수동적 기쁨을 폄하하는데, 이런 논리는 부르주아적이고 병리적이라는 것이다. 또 지은이는 네그리가 이해한 것과는 반대로 스피노자가 다중의 자유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반대한다. 노동력의 가치가 노동시간으로 정해진다는 마르크스의 설명은 순진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가치는 말하자면 ‘생활임금’인데, 그 생활의 수준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단순한 노동시간의 가치가 아니라 ‘정치적 가치’라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새물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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