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영(37)씨
사랑보다 ‘교환·거래’의 결혼
내밀한 상처 품은 ‘현재 행복’
우리 시대의 작동원리로 조명
내밀한 상처 품은 ‘현재 행복’
우리 시대의 작동원리로 조명
〈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창비·9800원 “남자를 바꾸는 건 오일교환과도 같다. 독자적 상품으로 키워볼 만한 상대인지 그 여부가 윤리적 결함을 좌우할 수 있다. 내 경쟁우위가 지속되는 한, 즉 내 상품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선 난 아직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연애의 경제학을 신봉한다. 아주 철저히.” 김윤영(37)씨의 세 번째 소설집 <그린 핑거>에는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연작 다섯 편과 다른 단편 둘이 실렸다. 인용한 대목은 연작 첫 편인 <블루오션 연애학>의 주인공 지은이 피력하는 연애관이다. 낭만적 사랑을 부정하고, 철저하게 경제 원칙에 입각해 연애와 결혼을 바라보는 태도가 반드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서 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신 마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런 태도는 어쩌면 불가피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을 테니까. 같은 연작의 두 번째 편인 <너무 고결한 당신>의 남자주인공 우인은 지은과 거의 정반대되는 자리에 서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골수와 장기를 남한테 기증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인물이다. 그런 개인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인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가령 자신의 신장을 기증받은 청년이 신학교를 그만두고 ‘딴따라’가 되겠다고 하자 그는 격분해서 청년을 몰아붙인다.
지은은 회사에서 잘리고 우인은 실연을 맛본 뒤 두 사람은 서로 만난다. 연작 마지막 편 <모네의 정원으로>는 “전시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실패 뒤 자신들의 완고한 원칙을 조금씩 양보하고 한결 유연해진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 가능성을 향해 문을 열어 놓은 셈이다.
그러나 표제작 <그린 핑거>와 <전망 좋은 집>에서 확인되는바 결혼 이후의 삶은 기대만큼 달콤하거나 안락하지는 않다.
“남편은 자기 일에 만족해했고 나도 한가롭게 홈스테이를 하며 사는 이 생활에 만족한다. 우린 둘 다 건강하고 우리 부부에겐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그린 핑거>)
“보드라운 극세사 천으로 휘감은 헤드라인 소파는 너무 편했고 바로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거실 야경은 바라만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전망 좋은 집>) 두 소설의 앞부분에서 따온 지문은 여주인공들이 현재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처럼 행복한 표면은 내밀한 상처라는 이면을 감추고 있기에 문제적이다. <그린 핑거>의 써니에게는 몇 차례의 수술 끝에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린 언청이라는 ‘과거’가, <전망 좋은 집>의 혜령에게는 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사산한 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몰려 임신과 출산을 위장해야 하게끔 된 처지가 각각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써니의 남편은 아내의 비뚤어진 자의식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는데, 소설은 그런 남편을 써니가 살해해서 암매장했을 것이라는 암시로 마무리된다. 그에 비한다면 노숙자 여인의 갓난아이를 제가 낳은 아이인 것처럼 속이는 혜령의 경우가 한결 다행스럽다 해야 할까. 그러나 혜령을 옥죄는 타인의 시선도 결코 만만한 적수는 아니다. 따져 보면 써니를 파국으로 몰아간 것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받아 왔던 타인의 파괴적 시선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말할 수 있겠다. 지은과 같은 젊은이들을 추동하는 교환과 거래의 자본주의적 원칙, 그리고 혜령과 써니를 괴롭히는 타인의 시선, 이 두 가지가 작가가 파악하는 우리 시대의 작동 원리라고.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김윤영 지음/창비·9800원 “남자를 바꾸는 건 오일교환과도 같다. 독자적 상품으로 키워볼 만한 상대인지 그 여부가 윤리적 결함을 좌우할 수 있다. 내 경쟁우위가 지속되는 한, 즉 내 상품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선 난 아직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연애의 경제학을 신봉한다. 아주 철저히.” 김윤영(37)씨의 세 번째 소설집 <그린 핑거>에는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연작 다섯 편과 다른 단편 둘이 실렸다. 인용한 대목은 연작 첫 편인 <블루오션 연애학>의 주인공 지은이 피력하는 연애관이다. 낭만적 사랑을 부정하고, 철저하게 경제 원칙에 입각해 연애와 결혼을 바라보는 태도가 반드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서 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신 마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런 태도는 어쩌면 불가피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을 테니까. 같은 연작의 두 번째 편인 <너무 고결한 당신>의 남자주인공 우인은 지은과 거의 정반대되는 자리에 서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골수와 장기를 남한테 기증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인물이다. 그런 개인적인 희생과 헌신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인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가령 자신의 신장을 기증받은 청년이 신학교를 그만두고 ‘딴따라’가 되겠다고 하자 그는 격분해서 청년을 몰아붙인다.
〈그린 핑거〉
“보드라운 극세사 천으로 휘감은 헤드라인 소파는 너무 편했고 바로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거실 야경은 바라만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전망 좋은 집>) 두 소설의 앞부분에서 따온 지문은 여주인공들이 현재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처럼 행복한 표면은 내밀한 상처라는 이면을 감추고 있기에 문제적이다. <그린 핑거>의 써니에게는 몇 차례의 수술 끝에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린 언청이라는 ‘과거’가, <전망 좋은 집>의 혜령에게는 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사산한 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몰려 임신과 출산을 위장해야 하게끔 된 처지가 각각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써니의 남편은 아내의 비뚤어진 자의식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는데, 소설은 그런 남편을 써니가 살해해서 암매장했을 것이라는 암시로 마무리된다. 그에 비한다면 노숙자 여인의 갓난아이를 제가 낳은 아이인 것처럼 속이는 혜령의 경우가 한결 다행스럽다 해야 할까. 그러나 혜령을 옥죄는 타인의 시선도 결코 만만한 적수는 아니다. 따져 보면 써니를 파국으로 몰아간 것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받아 왔던 타인의 파괴적 시선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말할 수 있겠다. 지은과 같은 젊은이들을 추동하는 교환과 거래의 자본주의적 원칙, 그리고 혜령과 써니를 괴롭히는 타인의 시선, 이 두 가지가 작가가 파악하는 우리 시대의 작동 원리라고.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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