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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꽃이 시를 쓰게 하지
새가 나를 웃게 하지

등록 2008-09-12 21:50

〈광휘의 속삭임〉
〈광휘의 속삭임〉
〈광휘의 속삭임〉
정현종 지음/문학과지성사·7000원

세는 나이로 칠순에 이른 시인 정현종씨(사진)가 신작 시집 <광휘의 속삭임>을 펴냈다. <견딜 수 없네> 이후 5년 만이다.

“순간/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오, 모든 따뜻함이여/ 행복의 원천이여.”(<오 따뜻함이여> 부분)

인용한 대목은 정현종 시의 발생 원리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모종의 시적 순간으로부터 탄생한다. 그 ‘순간’은 대체로 상승과 도약의 순간이다. 많은 시들이 하강과 침잠을 노래할 때, 정현종 시는 홀로 통통 튀거나 자유로이 춤을 춘다. “그 산 오르면,/ 나무들과 함께/ 높은 데로 높은 데로/ 솟아오르면/ 공기만이 에너지/ 웃음이 연료!”(<산 예찬>)는 물론 산을 오르는 일에 대한 시이지만, 정현종 시가 비롯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비유로도 읽을 수 있다.

어둠과 절망, 슬픔과 분노에 더 친연성을 보이는 여느 시들과 달리 정현종씨의 시는 이례적으로 밝음과 기쁨과 행복에 바쳐진다. 가령 그가 “우리는 한없이 꽃 피리니,/ 웃는 공기 웃는 물 웃는 시방(十方)과 더불어/ 꽃빛 빛꽃 피리니”(<이런 시야가 어디 있느냐>)라고 노래할 때 그는 대책 없는 ‘행복주의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행복을 무지나 무책임과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이 무겁디무거운 역사를 그나마/ 겨우 건져내고 있는 미의지(美意志)여”(<예술이여-베네치아 시편 1>)에서 보듯 그가 구가하는 기쁨과 행복은 무거운 역사의 하중에 맞서, 말하자면 ‘발견’하고 ‘창조’해 내는 적극적인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자체를 느낄 때에만 피는 그 꽃/(…)/ 시심(詩心)에서나 겨우 그 꽃 그/ 꽃 시간은 희귀하게 동터오니”(<꽃 시간 2>)가 말하는 것은 시를 쓰고 읽는, 또는 시적인 사유를 작동시키는 행위의 희귀한 능력에 대해서이다.


정현종 시인
정현종 시인
그런데 ‘미의지’ 또는 ‘시심’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대답 대신 시 한 편을 읽어 보자.

“방 안에 있다가/ 숲으로 나갔을 때 듣는/ 새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으냐!/ 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 속속들이 한 몸이요,/ 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 그 파동 서로 만나/ 만물의 물결,/ 무한 바깥을 이루니…”(<무한 바깥> 전문)


자연의 뭇 생명과 교감하고 나아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세가 미의식과 시심의 알짬을 이룬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렇게 만나서 생성되고 유동하는 파동과 물결이 바로 그의 시들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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