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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이념, 급조한 정치적 수사일뿐”

등록 2008-09-18 14:05수정 2008-09-18 14:09

2003년은 보수세력의 ‘행동주의’가 절정에 이른 해다. 이듬해인 2004년부터는 이념 정립을 목표로 하는 ‘뉴라이트 운동’이 본격화됐다. 2003년 6월2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2003년은 보수세력의 ‘행동주의’가 절정에 이른 해다. 이듬해인 2004년부터는 이념 정립을 목표로 하는 ‘뉴라이트 운동’이 본격화됐다. 2003년 6월2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보수주의와 한국정치’ 학술대회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21세기 초엽 한국 보수주의의 약진은 의미심장하다. 시민사회를 일구어 마침내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이에 대한 학계의 논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데, 뉴라이트가 그 이름처럼 정말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친일·반공·독재의 과거 수구세력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인지의 문제다. 정치사상의 맥락에서 이를 따져보는 자리가 20일 낮 12시30분부터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열린다. 한국정치사상학회가 ‘보수주의와 한국정치- 무엇을 보수할 것인가’를 주제로 여는 학술대회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기존 주장을 재구성한 것
시민사회 조직·동원엔 성공…정체성모색 실패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발표문에서 민주정부 이후 한국 보수주의 세력의 변화 양상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보수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분단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민주정부가 내건 ‘탈냉전·민주화·다원화’의 가치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 반공주의의 약화와 반미 감정의 확산으로 비쳤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는” 일이었다. 이것이 한국 보수주의의 자기 쇄신의 출발점이다.

쇄신의 노력은 두 갈래로 나타났는데, 보수 행동주의와 뉴라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3년 ‘반핵반김 국민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중집회를 통해 전통적 보수집단의 ‘행동주의’가 돌출했다. 강 교수가 보기에 이런 보수 행동주의는 “민주화 이후 발생한 다양한 시민운동과 (진보 진영의) 행동주의를 모방한 것”이다.

보수 행동주의를 주도한 것은 전통적 보수세력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이후 ‘뉴라이트’가 출현했다. 강 교수는 이를 “본격적인 보수주의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뉴라이트의 기치를 내건 이른바 ‘전향 386’들이 “보수언론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단골 논객으로 초대받았고, 보수언론을 대신하여 보수여론을 조성하고 확산하는 선봉장으로 급부상했다”고 분석했다.

뉴라이트가 펼친 담론 공세의 핵심은 ‘포퓰리즘’에 대한 것이었다는 게 강 교수의 생각이다. 전통적 보수세력이 내걸었던 ‘빨갱이’라는 이념 공세와 비교할 만한 이 담론은 “더 이상의 민주화는 필요하지 않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는 타락한 민주주의인 중우정치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민주화의 성과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뉴라이트의 담론은 전통적 보수주의와 구분된다고 강 교수는 평가한다. 다만 그것은 ‘엘리트주의적 민주주의’다. 아울러 사회적 자유주의와 평화공존형 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신자유주의와 반공자유주의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혁신의 요소가 추가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주장을 좀 더 일관되고 체계적인 논리를 통해 엮어낸 것”이다. 오히려 뉴라이트의 새로움은 정치 자원의 동원 양상에 있는데, “과거처럼 국가에 기대지 않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보수세력을 자발적으로 동원·조직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보수세력의 자기 쇄신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의 발표문은 한국 보수의 진정한 사상적 성찰을 주문한다. 양 교수는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보수주의라 불릴 수 있는 이념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혁신세력과 논쟁을 하며 자기를 정립한 서구의 보수주의와 달리 혁신세력을 아예 절멸시킨 한국 보수주의는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제도·체제를 뒷받침하는 가치를 능동적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이념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비록 위기의식에서 비롯하긴 했지만 그런 점에서 뉴라이트는 “한국의 보수진영이 이념적 정체성을 본격 모색하기 시작한”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강 교수와 마찬가지로 양 교수 역시 그 진전이 대단치 않다고 지적한다. “뉴라이트가 중심 이념으로 내세우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체계적 이념이기보다는 정치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급조한 정치적 수사”라는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진정한 쇄신을 지체시키는 것은 이명박 정부라고 양 교수는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의 일부가 이념 정체성 모색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가치관과 이념에 근거하지 않은 실용성을 내세워, 오히려 보수주의의 이념적 발전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 새로움이 없지 않으나 지적 성찰과 이념 정립에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고, 다만 새로운 조직 방식으로 국가권력 장악에만 성공했다는 데 뉴라이트의 특징이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양 교수는 이런 글을 덧붙인다. “그 점에 관해서 진보 진영도 다르지 않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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