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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출구 없는 소통부재의 세상 속 ‘자폐증’

등록 2008-09-19 16:44

〈아웃〉
〈아웃〉
〈아웃〉
주영선 지음/문학수첩·9500원

2천만원 고료 제6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인 주영선(42)씨의 장편소설 <아웃>이 출간되었다. 소설은 시골 보건진료소 소장이 마을의 몇몇 ‘문제 할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결국 타지로 전출되기까지 벌어지는 소동과 파국적 결말을 밀착 촬영처럼 보여준다.

부녀회장 감투와 특유의 뚝심으로 주민들을 휘어잡은 채 갖은 전횡을 일삼는 장달자, 그와 아웅다웅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공생 관계에 있는 교활한 인물 박도옥, 그리고 장달자의 기세에 눌려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하는 김금송. 칠순을 바라보는 세 할머니는 각자의 속셈과 욕심에 맞추어 진료소장을 이용하려 하다가 여의치 않자 일종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그를 마을에서 쫓아낸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터무니없는 모함을 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집요하게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세 할머니의 모습은 순박이니 인정이니 하는, 시골 노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공무원이라는 주인공의 신분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억지가 진료소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청으로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곤 한다. 상급자한테서 해명을 요구받은 주인공이 아무리 이치에 맞게 설명해 봐야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다: “이 세상 사람들한테 물어봐. 주민들하고 공무원이 싸웠다면 공무원을 욕하지 주민들을 욕하지 않아.”(238쪽)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웃>은 카프카의 어떤 소설들을 떠오르게 한다. 작가 자신의 체험에 바탕한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그 여부와 관계 없이 부조리와 악의가 판을 치는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그들이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한다는 것, 나도 어쩌면 다락방에 갇혀 소통부재의 이 세상에서 자폐증을 앓아 왔는지도 모른다.”(256쪽)

자폐증을 앓는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주인공은 소설 말미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데, 민주적 토론과 상식적 의사소통이 무망해 보이는 세상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어찌 주인공뿐이겠는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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