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이젠 당신이 읽을 차례…날 읽어봐”
‘읽기’와 ‘쓰기’ 다양한 의미 곱씹어
‘읽기’와 ‘쓰기’ 다양한 의미 곱씹어
〈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문학동네·1만원 “언제부턴가 모든 게 책으로 보여. 세상도 사람도 모두모두. 중증이야.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 (…) 이번에는 당신이 읽을 차례야. 나를 읽어봐. 당신의 독서를 위해서라면 나는 스스로 책이 되는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으니까.”(‘작가의 말’) 김경욱(37)씨의 다섯 번째 소설집 <위험한 독서>를 읽는 한 가지 방법은 책 뒤에 붙인 ‘작가의 말’을 참조하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책읽기를 내세운 이 작품집을 무엇보다 읽기와 쓰기에 관한 텍스트로 접근해 보자. 표제작의 주인공은 ‘독서치료사’.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약과 치료법을 처방하듯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한 뒤 적절한 책을 추천하고 독서 과정을 지도한다. 사귄 지 7년 된 남자친구를 정리하고 싶다는 서른 살 여성.(“당신은 여러모로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사양> 같은 책을 권유해서 읽게 하자 뚜렷한 효과가 나타난다. 여자의 상태가 좋아져 상담을 그만 받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가 거꾸로 환자에게 집착하게 된 것: “당신의 진면목을 읽어나가는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비로소 시작될 참인데.” 독서가 위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다시 ‘작가의 말’을 들어 보자: “독서는 위험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니까. 가차없이 돌아보게 하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또 왜 위험하다는 것일까. ‘작가의 말’의 나머지 부분을 참조해 보자. 익숙한 평안을 깨뜨리고 불안한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독서는 위험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브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일에 견줄 만한 실존의 모험에 해당하는 것이다.
<위험한 독서>가 읽기에 관한 작품이라면 단편 <천년여왕>은 쓰기의 문제를 다룬다. 여성잡지사에 근무하던 남자가 처음 쓴 소설로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른 데 고무된다. 사표를 내고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간다. 소설을 써서 아내에게 보여준다. ‘어디서 본 듯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찾아보니 실제로 비슷한 작품이 있었다! 다음 작품도, 그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 “아내에게는 당최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경우 아내란 모방과 표절을 향해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세상 모든 독자와 비평가를 대리하는 존재라 하겠다. 모름지기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이 무서운 감시자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쓰기 또한 읽기에 못지않게 ‘위험한’ 일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떠할까.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의 주인공은 무엇이든 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의 로열 회원이 되어 ‘휴식 같은 고독’을 빌린다. 일요일이면 직장과 가정에서 해방되어 모처에 틀어박힌 그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읽는 것이다. 이 경우의 독서란 번다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휴식이라 할 수 있을 테다.
그런가 하면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서 훈육당하며 사감의 눈을 피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는 <황홀한 사춘기>의 주인공에게 독서는 짜릿한 일탈과 모험의 동의어라 하겠다. 문간방에 세든 대학생의 ‘불온서적’을 읽는 초등학생(<게임의 규칙>), 첫사랑 상대에게 보낸 편지에 릴케의 시를 잘못 옮겨 적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하는 여고생(<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같은 또다른 양태의 읽기와 쓰기도 있다. 그 모든 읽기의 궁극은 무엇일까. 답은 역시 ‘작가의 말’에 있다: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경욱 지음/문학동네·1만원 “언제부턴가 모든 게 책으로 보여. 세상도 사람도 모두모두. 중증이야.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 (…) 이번에는 당신이 읽을 차례야. 나를 읽어봐. 당신의 독서를 위해서라면 나는 스스로 책이 되는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으니까.”(‘작가의 말’) 김경욱(37)씨의 다섯 번째 소설집 <위험한 독서>를 읽는 한 가지 방법은 책 뒤에 붙인 ‘작가의 말’을 참조하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책읽기를 내세운 이 작품집을 무엇보다 읽기와 쓰기에 관한 텍스트로 접근해 보자. 표제작의 주인공은 ‘독서치료사’.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약과 치료법을 처방하듯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한 뒤 적절한 책을 추천하고 독서 과정을 지도한다. 사귄 지 7년 된 남자친구를 정리하고 싶다는 서른 살 여성.(“당신은 여러모로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사양> 같은 책을 권유해서 읽게 하자 뚜렷한 효과가 나타난다. 여자의 상태가 좋아져 상담을 그만 받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가 거꾸로 환자에게 집착하게 된 것: “당신의 진면목을 읽어나가는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비로소 시작될 참인데.” 독서가 위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다시 ‘작가의 말’을 들어 보자: “독서는 위험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니까. 가차없이 돌아보게 하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또 왜 위험하다는 것일까. ‘작가의 말’의 나머지 부분을 참조해 보자. 익숙한 평안을 깨뜨리고 불안한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독서는 위험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브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일에 견줄 만한 실존의 모험에 해당하는 것이다.
독서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런가 하면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서 훈육당하며 사감의 눈을 피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는 <황홀한 사춘기>의 주인공에게 독서는 짜릿한 일탈과 모험의 동의어라 하겠다. 문간방에 세든 대학생의 ‘불온서적’을 읽는 초등학생(<게임의 규칙>), 첫사랑 상대에게 보낸 편지에 릴케의 시를 잘못 옮겨 적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하는 여고생(<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같은 또다른 양태의 읽기와 쓰기도 있다. 그 모든 읽기의 궁극은 무엇일까. 답은 역시 ‘작가의 말’에 있다: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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