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독서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등록 2008-09-26 21:00수정 2008-09-26 21:18

〈위험한 독서〉
〈위험한 독서〉
“이젠 당신이 읽을 차례…날 읽어봐”
‘읽기’와 ‘쓰기’ 다양한 의미 곱씹어
〈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문학동네·1만원

“언제부턴가 모든 게 책으로 보여. 세상도 사람도 모두모두. 중증이야.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 (…) 이번에는 당신이 읽을 차례야. 나를 읽어봐. 당신의 독서를 위해서라면 나는 스스로 책이 되는 위험을 무릅쓸 수도 있으니까.”(‘작가의 말’)

김경욱(37)씨의 다섯 번째 소설집 <위험한 독서>를 읽는 한 가지 방법은 책 뒤에 붙인 ‘작가의 말’을 참조하는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책읽기를 내세운 이 작품집을 무엇보다 읽기와 쓰기에 관한 텍스트로 접근해 보자.

표제작의 주인공은 ‘독서치료사’.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고 약과 치료법을 처방하듯 피상담자의 심리상태를 체크한 뒤 적절한 책을 추천하고 독서 과정을 지도한다. 사귄 지 7년 된 남자친구를 정리하고 싶다는 서른 살 여성.(“당신은 여러모로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사양> 같은 책을 권유해서 읽게 하자 뚜렷한 효과가 나타난다. 여자의 상태가 좋아져 상담을 그만 받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나’가 거꾸로 환자에게 집착하게 된 것: “당신의 진면목을 읽어나가는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비로소 시작될 참인데.”

독서가 위험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다시 ‘작가의 말’을 들어 보자: “독서는 위험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니까. 가차없이 돌아보게 하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또 왜 위험하다는 것일까. ‘작가의 말’의 나머지 부분을 참조해 보자. 익숙한 평안을 깨뜨리고 불안한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독서는 위험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브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일에 견줄 만한 실존의 모험에 해당하는 것이다.


독서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독서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위험한 독서>가 읽기에 관한 작품이라면 단편 <천년여왕>은 쓰기의 문제를 다룬다. 여성잡지사에 근무하던 남자가 처음 쓴 소설로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른 데 고무된다. 사표를 내고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간다. 소설을 써서 아내에게 보여준다. ‘어디서 본 듯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찾아보니 실제로 비슷한 작품이 있었다! 다음 작품도, 그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 “아내에게는 당최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경우 아내란 모방과 표절을 향해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세상 모든 독자와 비평가를 대리하는 존재라 하겠다. 모름지기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이 무서운 감시자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쓰기 또한 읽기에 못지않게 ‘위험한’ 일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떠할까.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의 주인공은 무엇이든 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의 로열 회원이 되어 ‘휴식 같은 고독’을 빌린다. 일요일이면 직장과 가정에서 해방되어 모처에 틀어박힌 그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읽는 것이다. 이 경우의 독서란 번다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휴식이라 할 수 있을 테다.


그런가 하면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에서 훈육당하며 사감의 눈을 피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는 <황홀한 사춘기>의 주인공에게 독서는 짜릿한 일탈과 모험의 동의어라 하겠다.

문간방에 세든 대학생의 ‘불온서적’을 읽는 초등학생(<게임의 규칙>), 첫사랑 상대에게 보낸 편지에 릴케의 시를 잘못 옮겨 적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괴로워하는 여고생(<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같은 또다른 양태의 읽기와 쓰기도 있다. 그 모든 읽기의 궁극은 무엇일까. 답은 역시 ‘작가의 말’에 있다: “부디 당신의 독서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