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쇼 / 황지우
미디어아트 거장 제프리 쇼,
황지우 시인이 만나다
황지우 시인이 만나다
제프리 쇼
‘쌍방향성’으로 능동적 관객 등장
백남준씨 작업은 혁명에 가까워
예술가들은 소통으로 사회 개입 테크놀로지가 예술작품의 생산과정과 감상자의 태도, 나아가 예술의 성격까지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한 인물은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었다. 베냐민의 시대에 예술의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갈래가 사진과 영화였다면, 오늘날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뉴미디어 기술과 예술이 만나 탄생시킨 미디어아트다. 지난 10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서울에 온 미디어아트의 거장 제프리 쇼(64)를 이 대학 총장인 황지우(56) 시인이 만났다. 쇼는 비디오아트 분야에서 이름이 높은 뉴미디어 예술가로,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의 아이시네마(iCinema)센터 책임자로 있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대담에서 두 사람은 예술의 종말에서 예술과 과학기술의 통섭, 예술교육의 방향과 뉴미디어 시대 예술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예술의 현안과 쟁점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지혜와 교감을 나누었다. 황지우 지난 40년간 현대미술은 동어반복의 답보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개념미술 아니면 설치미술, 그도 아니면 ‘개념 더하기 설치미술’의 동일어법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이런 답답한 상황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디어아트가 새로운 예술을 향한 비상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제프리 쇼 ‘예술의 종말’이란 말은 제가 미디어아트 작업을 시작했던 1960년대 중반 이미 확산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술이 종말의 나락에 빠져들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다분히 뉴미디어 덕분입니다. 예술이 뉴미디어를 활용함으로써 관객과 작가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른바 ‘쌍방향성’인데, 이를 통해 관객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존재, 나아가 작품의 공동 창작자로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황 선생은 작품 활동을 통해 가상현실의 출현을 일찌감치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애초 가상현실을 작품 안에 도입하려는 실험을 어떻게 구상하게 됐습니까? 쇼 미술은 항상 세계를 ‘사실처럼’ 재현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가상현실은 미술사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예술적 재현의 전통 안에 존재합니다. 예술 활동은 근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며, 이를 통해 대상을 재인식하고 세계의 감춰진 비밀을 찾아내려는 시도니까요. 다만 가상현실은 기술적 구성물이란 점에서 종래의 재현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황지우
순수예술 교육에 몰입해야 하나
미디어아트, 새 돌파구 될 수도
실재와 가상 융합된 제3의 공간 황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각적 몰입이나 세상에 대한 상상적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선생의 작업은 60~70년대 요제프 보이스나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플럭서스(fluxus) 운동과도 상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쇼 백남준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특히 그가 티브이를 가지고 했던 작업은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기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줬으니까요. 그의 초기 글은 ‘오늘날 인터넷이 열어가는 세상을 미리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입니다. 황 우리 대학은 디지털미디어와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을 접목한 비주얼아트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향한 통로를 열어주고, 미래의 동력인 창조산업에서 융합 콘텐츠를 창작할 인재를 길러내자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이를 달갑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 순수예술 교육에 전념하라는 것인데, 외국 예술대학의 경우에는 어떤가요? 쇼 오늘날의 모든 예술은 뼛속 깊이 미디어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미디어아트를 배제한 채 순수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문제적인 차원을 넘어 불가능하기까지 합니다. 현실은 순수예술 종사자에게도 뉴미디어와 미디어아트에 대한 관심과 학습을 요구하는데, 학생들에게 순수예술만 가르쳐라? 한마디로 난센스지요. 그 말이 제겐 예술교육을 포기하라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황 지난 3월 한국에서는 무선광대역 인터넷(와이브로) 기술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습니다. 그 뒤 초고속 인터넷망과 연결된 캠코더와 모바일폰에 의해 실시간 개인 대 개인(P2P) 통신이 대중화되면서 6월 촛불시위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었지요. 이 사건은 한국의 정치제도와 문화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은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연결하면서, 동시에 두 공간이 융합된 ‘제3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쇼 인간의 문화와 기계의 문화가 통합된 제3의 공간은 미래의 예술 활동을 위해서도 너무나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켜켜이 쌓여온 전통의 중압과 역사적 상상력의 한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이 제3의 공간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아무리 반복해서 종말이 선언된다 해도 예술의 미래는 낙관적입니다. 황 공감합니다. 기술문명이 가져오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공포를 뛰어넘어,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 더 풍요롭고 인간적인 예술의 새 지평을 열어줄 것이란 희망을 갖게 합니다. 쇼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의 기술은 과거 산업사회의 생산기술과 달리 그 본질에서 소통의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연유로 기술의 발전은 예술가가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도 변화시킵니다. 선배 예술가들이 사회로부터 거리를 둔 예언자적 비판의 형태로 사회에 개입했다면,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기술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소통을 통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가들이 현대 기술의 추이에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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