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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류의 조상찾기, 그 행복한 괴로움

등록 2008-10-17 20:15

〈최초의 인류〉
〈최초의 인류〉
〈최초의 인류〉
앤 기번스 지음·오숙은 옮김/뿌리와이파리·2만2000원

‘루시’의 20년 영광 좌초 뒤 여기저기서 새 인류 발견 경쟁
기존이론 몰아낼 ‘반증 단서’ 찾아
사막 뒤지고 때론 투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화석 순애보’

고인류학자들은 순정파다. 끝내 닿지 못하더라도 접점(接點)을 향하는 점근선(漸近線)의 열망처럼, 인류 최초의 조상을 발견하려는 고인류학자들의 노력은 연인을 그리는 청춘의 순정을 닮았다. 실제 <최초의 인류>에 담긴 ‘화석 발견사’는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숱하게 건넌 고진감래의 역사다. 그리고 그 출발은, 연인의 첫 만남이 대개 그러하듯, 우연 혹은 맹목에서였다. 1974년 ‘루시’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을 발견해, 단숨에 고인류학의 스타로 떠올랐던 도널드 조핸슨의 고백은 그들의 ‘대책 없는 순정’을 잘 보여 준다.

“인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의하지도 않고서, 과학이 한 세기 넘게 인간과 인간 이전, 원시 인류에 관해 떠들었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스꽝스럽든 아니든, 상황은 그랬다.” 과학잡지 <사이언스>에서 10년 넘게 인간 진화에 관한 글을 써 온 지은이 앤 기번스(MIT 과학저널리즘 특별연구원)는 “셜록 홈스, 에르퀼 푸아로 등을 모아놓고 끝없이 논쟁하며 해답을 찾게 하는 탐정소설”처럼 독자를 끌어들인다.

고인류학의 불씨를 댕긴 이는 네덜란드의 젊은 의학도 외젠 뒤부아였다. 1868년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찰스 다윈이 주장했던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의 유인원들이 인간과 더 가까운 친척이라고 믿었고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말이 없는 원숭이 인간)라는 이름까지 달았다. 뒤부아는 그길로 인도네시아를 향했다. 하지만 1891년 그가 말라리아의 창궐 속에서 기적적으로 건져 올린 호미니드 화석(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자바 원인)이 맞닥뜨린 것은 영예와 인정이 아니라 의심과 비방뿐이었다. 이후 레이먼드 다트(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1924), 에드워드 루이스(라마피테쿠스 브레비로스트리스·1934), 루이스 리키(호모 하빌리스·1960) 등의 발견이 잇따르고 자료가 축적되면서 의심과 비방의 자리를 검증과 비판이 채우게 된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한겨레〉 자료사진.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 우여곡절 끝에, 직립보행을 하는 작은 체구의 여성 ‘루시’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뒤 고인류학은 최초의 호미니드(현생인류+원시인류)를 발견했다는 성취감에 사로잡혔다. 비틀스의 노래 ‘다이아몬드를 가진 하늘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에서 따온 이름인 루시는 직립보행을 가능케 한 자극이 두뇌의 발달이 아니라 도구 제작이라는 가설에 결정적 힘을 실었다. 그러나 발견된 뼈대가 전체 뼈(206개)의 20%에 불과하다는 흠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고인류학자들은 루시가 ‘최초의 인류’라는 확신에 균열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유전학자들이 디엔에이의 변화 양상을 파악해 측정한 ‘분자 시계’가 일관되게 인간-침팬지의 분리 시점을 500만~700만년 전으로 가리키자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돼 버렸다. 루시의 종이 등장한 것은 310만년 전으로 측정됐기 때문이다.

고인류학의 ‘평화’는 20년 만에 허망하게 무너졌고 다시 ‘춘추 전국 시대’가 온 것이다. 루시의 발견 이후 ‘루시 이전’을 겨냥한 고인류학자들의 탐험사는 추리소설에 버금갈 만하다. 고집쟁이 미국인 팀 화이트와 프랑스 여인 미셸 브뤼네. 여기에 동물학자 미브 리키와 영국의 지질학자 마틴 픽퍼드가 벌이는 ‘4강전’은 요약 불가능한 풍경이다. 그것은 마치 원고지 1000장짜리 장편소설을 1장으로 줄이는 일과 같다. 지은이는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발견과 논쟁의 풍경을 객관의 눈으로 그리면서, 고인류학자들 사이의 투쟁과 라이벌 의식, 잘못된 시작과 실수들마저도 과학적 발견의 밑거름이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오로린 투게넨시스,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바렐가잘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루시 이후 발견된 호미니드들이다. 요령부득의 이름만큼이나 고인류학자들이 풀고자 하는 수수께끼는 늘 좌초 위험을 안고 있다. 기존 이론을 밀어내는 반증의 화석이 아프리카 계곡에서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들의 ‘행복한 괴로움’에 대해 애정과 낙관을 보인다. “과학은 하나의 사회적 노력입니다 … 과학은 과학자 개인들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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