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요란 푸른아파트〉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김려령 지음·신민재 그림/문지아이들·8500원 생명 부여받은 건물 네 동과 상가
말썽쟁이 기동이 나타나면서 소란
할머니처럼 지혜롭고 푸근한 모습
인간들의 삶 지켜보고 보듬어줘 시골에서는 나이를 알 길 없는 커다란 고목이 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다면, 시가지에서는 낡은 아파트가 서민들의 삶과 도시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지은 지 40년이 지나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푸른아파트는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5층짜리 건물 네 동과 3층짜리 상가로 이뤄져 있다. 1동은 30년 전 큰 벼락을 맞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아파트 주민들을 지켜냈지만,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 2동은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고,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건축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걸어 놓은 검정 띠를 온몸에 감고 있는 3동은 늘 우울하다. 소란 떠는 사람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한 4동은 성가신 주민이 들어올 때마다 몸을 비틀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덕분에 주위에서 제일 싼 집값을 자랑한다. 상가는 셈이 빠르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가장 잘 아는 소식통이다.
부모의 경제 형편이 어려워져 2동 102호에 사는 할머니에게 홀로 맡겨진 초등학생 기동이가 나타나면서 아파트들은 서로 나눌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우편물을 뒤섞고, 소화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등 온갖 말썽을 피우는 기동이에게 시달리면서도 아파트들은 장난꾸러기의 깊은 속을 헤아릴 줄 안다. 그들은 기동이가 상가 문방구에서 200원짜리 빨간 머리끈을 사 학교 짝꿍인 여자아이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부모와 같은 호기심과 애정으로 숨죽이며 관찰하기도 한다. 제 자식만 귀한 줄 알고 기동이를 문제아로 몰아 홀로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의 마음에 상처를 준 동네 학부모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도 물론 아파트들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낡은 아파트는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콘크리트 덩어리이거나 재건축을 통해 재산을 불릴 수단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푸른아파트는 어느 노인이나 고목보다도 지혜롭고 푸근한 마음으로 인간들의 세상살이를 지켜보고 보듬어주는 존재다. 이 동화를 읽고 나면 우리가 잠든 사이 아파트들이 자신들의 품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두런거릴 것만 같고, 길을 가다가 금이 가고 칠이 벗겨진 아파트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할 것 같다.
<완득이> <기억을 가져온 아이>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등의 작품으로 마해송문학상,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창비청소년문학상 등을 휩쓴 김려령씨가 가마솥, 의자, 들꽃 등 모든 사물과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작품. 어린아이의 서툰 그림과도 같은 신민재씨의 삽화도 눈길을 끈다. 초등 3~4학년 이상.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김려령 지음·신민재 그림/문지아이들·8500원 생명 부여받은 건물 네 동과 상가
말썽쟁이 기동이 나타나면서 소란
할머니처럼 지혜롭고 푸근한 모습
인간들의 삶 지켜보고 보듬어줘 시골에서는 나이를 알 길 없는 커다란 고목이 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다면, 시가지에서는 낡은 아파트가 서민들의 삶과 도시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지은 지 40년이 지나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푸른아파트는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5층짜리 건물 네 동과 3층짜리 상가로 이뤄져 있다. 1동은 30년 전 큰 벼락을 맞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아파트 주민들을 지켜냈지만,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 2동은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고,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건축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걸어 놓은 검정 띠를 온몸에 감고 있는 3동은 늘 우울하다. 소란 떠는 사람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한 4동은 성가신 주민이 들어올 때마다 몸을 비틀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덕분에 주위에서 제일 싼 집값을 자랑한다. 상가는 셈이 빠르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가장 잘 아는 소식통이다.
재건축 앞둔 아파트 알콩달콩 수다를 떠네
<완득이> <기억을 가져온 아이>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등의 작품으로 마해송문학상,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창비청소년문학상 등을 휩쓴 김려령씨가 가마솥, 의자, 들꽃 등 모든 사물과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작품. 어린아이의 서툰 그림과도 같은 신민재씨의 삽화도 눈길을 끈다. 초등 3~4학년 이상.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