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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까이꺼…행복은 당신 안에 있는 거야

등록 2008-11-07 21:34수정 2008-11-07 21:34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연애? 불륜? 예상 비튼 얄짤없는 조언
김어준씨 ‘한겨레 esc’ 등 상담글 묶어
〈건투를 빈다〉
김어준 지음/푸른숲·1만5800원

“남친은 명품 좋아하고 비싼 식당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의) 직장 생활 5년간 저금 한 푼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불안한 남자와 결혼을 전제로 계속 만나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됩니다.”

<건투를 빈다>에 수록된 상담사례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 ‘이에스시’(esc) 섹션에 연재된 김어준씨의 칼럼 ‘그까이꺼 아나토미’에 실렸던 내용이다. 이 칼럼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고민 메일의 유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현실입니다.’ 예상 답변은 아마도 이 두 가지. 하지만 김어준은 엉뚱하게도 오래전 배낭여행 중 한 달 예산을 털어 명품 양복을 샀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 양복을 입고 한 달 동안 공원 벤치에서 잤단다. 무지 행복했단다. 지금도 옷장 속 그 양복을 쳐다보기만 해도 흐뭇하단다. 언뜻 이해 안 된다. 충동적으로 살라는 이야기인가?

“문제는 소비 양태가 아니라 세계관”이라고 그는 말한다. 세계관이 너무 거창하다면 비용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 달 생활비를 바치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양복인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기꺼이 감당할 만한 가치가 그 남친에게 있는 건가, 따져볼 건 이 문제다. 지금의 남친과 든든한 노후보장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시라.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인생에 공짜 없다. 이 ‘가차없는’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그러니까 ‘모든 게 잘될 거야, 힘 내’라고 등 두드려 주길 기대했다가는 뒤통수 맞을 수도 있다. 호되지만 정신 번쩍 나는 일격 말이다.

“애 키우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1년 전 10여 년 만에 한 친구와 연락이 됐는데 그만 사랑에 빠졌어요. 짜릿함과 행복을 맛보지만 항상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우리 둘 다 가정은 지킬 거예요. 그 친구와 계속 잘 지내고 싶은데 괴로워요.”



〈건투를 빈다〉
〈건투를 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인 이 불륜 고민도 마르지 않는 상담 질문이다. 다시 선택과 비용의 문제다. “당신은 정숙한 부인 대신 바람난 아내, 윤리적 엄마 대신 불륜한 부모를 택했다. 당신, 그런 사람이다.”

독하다. 좀 더 들어보자. “그 선택 자체가 옳다 그르다는 게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만큼의 사람이란 거다. 더도 덜도 말고.” 액면가로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는 것, ‘자기객관화’ 없이 어떤 고민도 답 안 나온다. “사람들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다.” 못되게 들리지만 진실이다. 바람 피우면서 정숙한 부인으로 남고 싶은 바람, 주변 용케 속여넘긴다 해도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인간인데, 어떻게 앞만 보고 사나. 뒤에 남기고 온 것들, 가지 않은 길, 김어준 맡투로 ‘본전 생각’ 어떻게 안 할 수 있나, 묻게 된다. 그래서 자기계발서 독법으로 이 책을 읽자면 망설임이나 후회, 자기연민이나 자기비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자존감의 훈련이다. 이 훈련은 자기객관화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게 자존감이다.

“작은 키 때문에 우울합니다. 연애할 자신도 없고, 후배들도 제 말은 잘 안 들어요.” 까칠한 지은이가 괜찮다고 말할 리 없다. 불리한 거 맞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뼈의 길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자존감의 결여”다. 스스로 주눅드는 순간, 내 삶에 대한 장악력은 내 손을 벗어나 남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내가 하찮은 사람 같아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일류대 안 다니는 나를 후지게 보겠지 눈치 보면서 스스로 하찮은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서문에 쓴 것처럼 “행복할 수 있는 힘은 애초부터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거, 그러니 행복하자면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필요”하다. ‘다 잘될 거야’ 위로만으로 메워지지 않는 심리적 공복감을 느낀다면 이 책에 밑줄 쫙쫙 그어도 좋다.

하지만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라는 거. 교과서는 누구나 애초부터 가지고 있다는 거. 건투를 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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