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지된 장소, 연출된 유혹
\\
\\
“시간 감각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놀이동산에서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면 1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처럼 느끼지만 나중엔 더 오랜 시간으로 기억된다.…다윗과 골리앗 신화를 닮은 <형사 콜롬보>의 이야기 구도에서 관객은 막강한 공격자보다는 허술하지만 지혜로운 다윗의 편에 서서 극을 본다. 신화는 연출의 핵심 줄거리다.…한 고집스런 아기가 엄마의 입에 이유식이 든 수저를 억지로 밀어넣어 먹이는 장면의 이유식 광고는 ‘거꾸로 된 세상’의 긴장감 해소 효과를 극대화한다….”
정치·선거마저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마케팅 시대에, 광고, 방송, 영화나 이벤트는 이제 ‘전략적 연출’을 통해 소비자·관객의 ‘머릿속 시나리오’를 자극하는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며 원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마음의 연출에 이처럼 자신만만하다면, 더 나아가 이런 물음도 끄집어낼 수 있다. 쇼핑몰, 놀이동산, 방송·광고, 이벤트 등에서 우리가 느끼는 호기심, 만족, 매력, 심지어 싫증은 순수한 우리의 감정일까? 아니면 전략적 연출이 만든 감정일까?
인지심리학자이며 연출전문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가 쓴 <금지된 장소, 연출된 유혹>(참솔 펴냄)은 소비자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홍보·마케팅 연출의 실용서이면서도, ‘연출된 유혹’의 단면을 보여주는 심리학 교양서로도 읽힌다. 연극·방송·영화·광고 등 분야에서 연출가로서 활동하는 지은이는 심리학에 기초한 전략적 연출기법의 전문가다.
이 책은 뒤집어 읽을 수 있는 실용서다. 뒤집어 읽으면 홍보·마케팅 연출의 심리전술이 드러난다. 지은이가 말하는 전략적 연출은 “누군가를 포섭하고 능동적으로 만드는 전략”이며, 그러므로 연출은 광고와 이벤트, 전시, 프리젠테이션, 방송, 영화, 디자인, 건축, 공연, 관광 뿐 아니라 선거와 정치에도 스며들어 있다.
연출 기획자들은 소비자·관객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까. 자, 이 책에 소개된 몇 장면을 들추어보자.
연출 기획자 ‘전략적 연출’통해 소비자
‘머릿속 시나리오’자극 원하는 감정 유도한다는데¨
우리가 느끼는 호기심 만족 실종들은
순수한 우리의 감정일까 전략적 연출이 만든 감정일까
장난감 상점의 나무숲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난감 동물은 소비자한테 마법에 걸린 동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오래 전에 잊어버린 듯한 이야기를 되살려 소비자를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머릿속 시나리오 자극) 품질개선에 관한 강렬한 의식을 불러내기 위해 과장된 비유가 동원되기도 한다. ‘99.9%의 무결함이란, 결국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날마다 17대의 비행기가 사고를 낸다는 것, 날마다 4명의 갓난아기가 숨지는 것을 의미한다.’(익숙한 것에 비유하기 효과)
전시실의 공동중심부에서 출발해 모나리자로 가는 화살표를 따라 점점 다양한 내부를 둘러보게 하는 루브르박물관은 박물관 여행을 미로 속 방향찾기 게임으로 바꾸어놓았다.(공간배치를 통한 놀이 체험).
초대된 기자들 외엔 들어갈 수 없는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의 새로운 기자회견 방식은 접근금지를 통해 가치와 권위를 높이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의식을 떠올리게 한다.(금지된 장소 효과).
세탁기는 꼭 빨래하는 데에만 써야 하나? 칵테일 술집에 등장한 세탁기 모양의 칵테일 혼합기는 평범함을 벗어나려는 고객들한테 ‘감각게임’을 제공한다.(차용된 언어 효과)
이런 심리게임은 퍼즐 풀기 같은 지적 게임의 마케팅에도 이어진다. 방송광고에서 거리에서 달려가는 스킨헤드 머리의 한 젊은이가 다른 방향의 카메라 3대에 포착되어 차례로 방영된다. 첫째·둘째 장면에선 젊은이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보이거나 앞쪽에 서 있는 나이든 사람의 돈을 빼앗으려 달려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다본 셋째 장면에서 젊은 남자는 나이든 남자를 옆으로 밀어내어 위에서 떨어지는 벽돌의 위험에서 그를 구해낸다. ‘전체의 시각에서 삶의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영국 일간 <가디언> 광고의 이런 메시지는 소비자와 벌이는 지적 게임을 통해 극대화한다.
지은이는 이런 연출이 ‘장사 잘 하기’라는 홍보·마케팅 목적에만 쓰이는 게 아니며 정치·사회의 갈등을 푸는 기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우리 생활이 사실상 ‘일상적 연출’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연출’에 대한 지은이의 이런 확대해석은 무리가 아니다. 다시 뒤집어 보자면, 대중적 소비사회에서 대중의 마음을 겨냥한 ‘전략적 연출’의 심리전술과 속셈을 정신 바짝 차리고 바라볼 필요성도 역시 커지고 있는 셈이다. 책에 소개된 영화·광고·상품·이벤트 등 사례 대부분이 라스베이거스·디즈니랜드 등 미국의 것 중심이어서, ‘그래, 맞아!’ 식의 실감나는 독서 체험이 쉽지 않다는 게 이 책의 단점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
||||
‘머릿속 시나리오’자극 원하는 감정 유도한다는데¨
우리가 느끼는 호기심 만족 실종들은
순수한 우리의 감정일까 전략적 연출이 만든 감정일까
장난감 상점의 나무숲에 대롱대롱 매달린 장난감 동물은 소비자한테 마법에 걸린 동물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오래 전에 잊어버린 듯한 이야기를 되살려 소비자를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머릿속 시나리오 자극) 품질개선에 관한 강렬한 의식을 불러내기 위해 과장된 비유가 동원되기도 한다. ‘99.9%의 무결함이란, 결국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날마다 17대의 비행기가 사고를 낸다는 것, 날마다 4명의 갓난아기가 숨지는 것을 의미한다.’(익숙한 것에 비유하기 효과)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