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나라 정부의 조기유학 프로젝트- 유미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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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8월11일, 9살에서 15살의 어린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상해에서 배에 올랐다.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1872년부터 1875년까지 청나라 정부는 네 차례에 걸쳐 모두 120명의 국비유학생을 파견했다.…‘유미유동’(留美幼童), 곧 미국으로 건너간 어린 유학생들은 아주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중국 작가 첸강·후징초의 <유미유동>(시니북스 펴냄)은 133년 전 청나라 정부가 장장 15년 계획으로 실시했다가 10년만에 중단한 유학 프로젝트의 전말과 그 주인공 유동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는 태평천국의 난, 아편전쟁 등으로 중국 대륙이 극심한 혼란과 변화를 겪던 19세기. 중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룽훙이 16년 동안 준비하고, 양무운동을 이끌던 이훙장 등이 미국에 유학생을 보내어 “저들(서방인)의 오묘한 비결”을 익혀야 한다며 낸 상소문이 받아들여져, 마침내 청 정부는 1872년 국비 조기유학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해마다 9~15살의 유동 30명씩을 4년에 걸쳐 유학 보내어 15년이 지난 뒤엔 떠난 순서에 따라 차례로 귀국시켜 국가의 중책에서 봉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쪽빛 적삼에 짙은 검은 색의 비단 파오를 입고 기다란 변발을 늘어뜨린 청나라 유동들이 미국에 첫발을 내디딘 때는 미국에서 기계장치를 이용한 대공업이 크게 일고 증기기관 기차시대의 흥분이 일던 때였다. 유동들이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던 1872년 9월15일치 <뉴욕타임즈>는 “어제 아주 어린 중국 학생 30명이 도착했다.…겉으로 보기에 예전에 미국을 찾았던 중국인들과는 달리 아주 말쑥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자원봉사 가정에 살며 중고등학교를 보낸 이들 가운데 50여명이 예일대학(예라오대서원), 보스톤 매사추세츠대학(뽀스뚠기기대서원) 등 명문 대학에 진학했다.
“오묘한 서양 기술 배우자”
19C말 어린이 120명 미국으로
변발차림으로 야구 · 럭비 즐겨 정부 급변으로 유학중 소환
귀국뒤 문화갈등 겪으며 좌절
‘근대화 밀알’서 잊혀진 존재로
그 과정에서 이들은 현대화의 현장인 미국 사회에서 놀라운 기기문명을 보았고, 사서오경과 변발을 금쪽 같이 여겼던 중국 문화에서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미국 문화로 이끌리는 ‘충격’을 받은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다양한 체험의 흔적들을 남겼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 그리고 그 딸과 어울려 지냈고, 예일대학 조정부 조타수로 이름을 남겼을 뿐 아니라 변발을 윗옷에 집어넣고 야구·럭비를 즐겼고, 서부영화에나 나올 법한 열차강도를 만나고, 미국 소녀와도 진한 연애생활을 즐겼으며, 학교 연설대회에서 미국 학생들과 당당히 겨루는 등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거기에선 너무나도 이질적인 중국과 미국의 문화가 ‘19세기의 만남’을 이룬다.
그러나 이야기는 유동들이 서양 학문에 열중해 귀국한 뒤 조국의 근대화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유학 프로젝트는 양무운동 반대세력들의 상소문으로 1881년 중단됐다. 이후 중국으로 소환된 유동들은 근대 문화에 푹 빠져 살아온 자신들과 전근대의 중국 문화 사이에서 심각한 문화 갈등을 겪어야했다. 양무운동의 몰락과 이훙장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한때 야심찼던 프로젝트의 주인공이었던 이들의 집단적 정체성은 더욱 흐트러졌다. 유미유동은 이제 거의 잊혀진 이야기가 됐다.
이 책은 지은이들이 1965년에 마지막 유동이 숨진 이후에 찾을 길 없는 유미유동의 흔적을, 후손과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유동들이 거쳐갔던 미국 현지 학교, 유학사무국 등을 답사해 발굴해낸 증언과 당시 편지·일기 등 자료를 통해 되짚어냈다. 그만큼 한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지은이들의 노고가 글 곳곳에 묻어나와, 흥미진진한 글쓰기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중국 역사에서 유미유동의 존재는 어떻게 이해될까. 옮긴이들은 이런 평가를 던진다. “유동들은 근대와 전근대, 서양과 동양, 외세와 자주, 매판과 애국, 입헌과 민주, 보수와 혁명, 백성과 국민, 천자의 나라와 보통 나라… 등의 경계에 칼날처럼 서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말과 생각과 행위에는 역사가 부여하는 긴장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것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19C말 어린이 120명 미국으로
변발차림으로 야구 · 럭비 즐겨 정부 급변으로 유학중 소환
귀국뒤 문화갈등 겪으며 좌절
‘근대화 밀알’서 잊혀진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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