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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1월 22일 잠깐 독서

등록 2008-11-21 18:50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스님이 전하는 참삶의 메시지

〈아름다운 마무리〉

가장 강력한 논리는 동일률이다. ‘사람은 사람이다’는 명제는 반증될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엔 내용이 없다. ‘내용 없는 진리’인 셈이다. 고금동서의 철인들이 궁리한 바가 그것이다. 형식-내용의 가파른 격차를 어찌 줄일 것인가. 철학이든 종교든 길 높은 생각들은 그 차이를 줄이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진리 탐구라 부른다. 법정 스님(76)이 4년여 만에 펴낸 새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도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다. 어떤 이들에겐 공맹인 듯 고루하게 보일 테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글에 공명해 왔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깨달음의 낙숫물 같은 문장들이 단아하다. “그대가 서 있는 바로 지금 그곳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고 있다면, 그 자리에 좋은 말씀이 살아 숨쉰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야 봄이 온다.” 선사의 지혜와 일상에서 우려낸 잠언들 여전하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설득에다 좋은 책을 가려 읽어야 한다는 제안은 앞선 책들보다 돌올하다. 스님의 글은 ‘사람은 사람이다’에서 ‘사람은 사랑이어야 한다’를 건너 ‘사람은 사랑이다’에 이른 듯 보인다. 하지만, 심불반조 간경무익(心不返照 看經無益). 제 마음에 비춰 돌이키지 않으면 글을 읽은들 무슨 소용이랴. 그는 넌지시 손짓한다. /문학의숲·1만15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사랑하고 싶은 자여, 공부하라


〈호모 에로스〉


〈호모 에로스〉
〈호모 에로스〉
‘작업의 정석’이란 영화가 있다. 연애 ‘선수’들의 잔머리 대결을 코믹하게 다뤘지만 현실에서 그 끝은 허무하다. 그 반대편에는 ‘불멸의 사랑’ 판타지에 갇힌 순정파들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쪽엔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의 전도사들도 있다. 보다 못한 한 인문학자가 코치로 나섰다. <호모 에로스>의 지은이는 “사랑을 공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모든 남녀가 ‘사랑과 연애의 달인’을 꿈꾸면서도 판판이 상처받고, 권태나 변태로 빠지는 이유다. 해법은 공부다. ‘연애 매뉴얼’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적 수준을 높이자는 얘기다. 삶이라는 배경을 망각한 사랑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 대신 몸을 쓰고, 책을 읽고, 삶을 창조하라는 게 처방전이다. 나아가 사랑의 ‘무상성’까지 체득한 이후라야 진정한 사랑의 고수가 된다. 짝사랑도 “내공수련의 찬스”다.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건 대상을 창조할 능력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니체의 말을 패러디하면 ‘천 개의 사랑과 천 개의 길’이 있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에로스의 에너지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 큐피드가 ‘에로스의 화살’을 날리듯, 지은이는 ‘로고스의 화살’을 날린다. 비행은 경쾌하나 살촉은 날카롭다. “연애불능 시대를 헤쳐가려면, 공부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고미숙 지음/그린비·1만19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 대재앙 뒤에서 웃는 이 누구인가

〈쇼크 독트린〉


〈쇼크 독트린〉
〈쇼크 독트린〉
<쇼크 독트린>은 지난 30년 동안 벌어진, 시장 근본주의적 자본주의의 섬뜩한 세계 정복사다. 시카고학파 경제학의 ‘거두’로 꼽히는 밀턴 프리드먼이 꿈꾼,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순수한 시장 자본주의가 권력과 돈을 쥔 이들의 무기가 되어, 어떻게 세계 곳곳에서 공공의 부를 약탈했는지를 추적한다. ‘쇼크 독트린’은 극소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이 과정이 평화롭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이들은 전쟁, 테러, 자연재해 등 재난을 이용해, 일반인들이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저항할 힘을 잃은 사이에 공공의 부를 사기업의 손에 넘겼다.

저널리스트인 지은이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 독트린’이 소수에게 천문학적인 부를 안기는 현장을 추적했다. 한 달에 수천명이 목숨을 잃는 이라크의 혼란 속에서 다국적 석유회사들은 방대한 유전 개발권을 챙겼다.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간 다음엔 어민들의 삶의 터전인 해변이 관광 리조트 업체에 팔려나갔다.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파산 세일”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가 다시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번에도 공포에 질려 공공의 자산을 약탈당할지, 규제 없는 시장 자본주의의 폐해를 직시하고 공존의 희망을 다시 발견할지, 기로에 섰다. 김소희 옮김/살림BIZ·2만8000원.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대중이 지성을 얻기 위한 조건

〈대중지성의 시대〉


〈대중지성의 시대〉
〈대중지성의 시대〉
1930년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에서 대중을 “지성이 없는 원시인”이라 적었다. 지금 보면 편견에 찬 독설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상당수 지식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중’과 ‘지성’은 사실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조합일지 모른다. 하지만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이 땅에 등장한 ‘대중지성’담론은 기존관념을 바꾸었다.

<대중지성의 시대>는 대중이 앎을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근대라는 시공간을 통해 살펴보면서, 대중지성이 성립 가능한 방향을 찾는 책이다. 구한말 조선은 관립학교를 세워 제한적 신식교육을 시작했지만, 교과서에는 양반이 노비 대하는 법이라는 장이 따로 있었을 만큼 시대착오적 면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에 근대교육체계를 도입했으나, 통치에 필요한 기초교육 이상을 보급하려 하지 않았다. 지배계급은 항상 대중에게 지식을 나눠주는 것에 인색했다.

현실의 위계질서는 앎의 위계질서로 연결됐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은 어떤가? 지식은 자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여전히 차별과 배제가 존재한다. 지은이는 진정한 대중지성을 이루려면 대중들의 연대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선명한 의식과 따뜻한 연대의 정신이야말로 대중지성의 파토스라고 얘기한다. 천정환 지음/푸른역사·1만6500원. 조기원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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