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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스라엘과 ‘테러리스트’

등록 2009-01-15 18:36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가자지구에 대한 잔인한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하마스를 무력화시키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는?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히 예견되는 결과의 하나는 이스라엘을 향한 테러의 증가일 테다.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처자식, 동무와 연인이 이스라엘의 포탄에 맞아 싸늘한 주검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정당하고도 필요한’ 복수의 제단에 제 한 목숨 바치겠노라 나서는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테러리스트의 존재는 다시 이스라엘의 비인도적 공격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쓰인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중동에서의 군사적 패권 유지를 위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존 업다이크(1932~)가 2006년에 발표한 소설 <테러리스트>(정상준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는 한 아랍계 미국 청년이 자살 폭탄 테러에 나서는 과정을 그려 적잖은 논란을 낳은 작품이다. 주인공 아마드는 교환학생으로 온 이집트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는 일찌감치 가족을 버리고 ‘탈영’해 버렸다.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아마드는 그러나 그 때문에 자신이 특별히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정작 그의 고민은 다른 데에 있다. 순전히 자신의 판단에 의해 독실한 이슬람 신자가 된 그에게는 하느님(알라신)을 모른 채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진 불신자들 및 이교도들의 세상이 혐오와 극복의 대상이다. “하느님이 없기 때문에 서구문화는 섹스와 사치에 사로잡혀 있어요.”(46쪽) 순결한 청년 아마드는 유대인(이지만 무신론자인) 상담 교사 잭 레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육감적인 흑인 여학생 조릴린은 육체와 쾌락을 경멸하고 신앙과 순결을 고집하는 아마드에게 말한다: “네가 삶을 혐오하는 것처럼 들리거든. (…)난 정신이 육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84쪽)

조릴린의 풍만한 육체는 물론 쾌락주의적 생철학 역시 아마드를 설복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성적이 괜찮았음에도 신앙의 스승인 셰이크 라시드의 지도에 따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트럭 운전 면허를 따서 가구점에 취직한다. 레바논계 일가가 운영하는 이 가구점은 결국 아마드로 하여금 9·11 몇 주년에 맞춘 테러에 나서게 되는 도약대로 구실한다. “그 사람들(=9·11 희생자들)은 금융 쪽에서 일하면서 미 제국에 이익만 챙겨줬을 뿐이야. 그 제국은 이스라엘을 싸고돌면서 매일같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체첸인, 아프가니스탄인, 이라크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어.”(212쪽) 가구점의 젊은 사장 찰리는 아마드를 테러로 이끌고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아마드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은 코란과 절대자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그에게 테러는 악마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경고를 발하고 하루빨리 절대자의 품에 안기는 일이다.

그런데 카뮈의 희곡 <정의의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결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에 앞서, 알고 보니 찰리가 미국 중앙정보국의 첩자였다는 설정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참한 현실을 감당하기에 미국 원로 작가의 소설은 지나치게 느긋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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