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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안한 일본사회 고전에 길을 묻다

등록 2009-01-23 19:08수정 2009-01-23 19:16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일본 역시 수출이 급감한 가운데, 지난해 11월20일 건설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원자재 가격 인하를 주장하는 펼침막을 들고 도쿄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도쿄/AP 연합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일본 역시 수출이 급감한 가운데, 지난해 11월20일 건설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원자재 가격 인하를 주장하는 펼침막을 들고 도쿄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도쿄/AP 연합
베스트셀러로 본 세계­|일본
새해를 맞는 지구촌 시민들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 앞에서 그 원인과 대안을 찾으며 마음의 양식을 구하고 있다. 유럽은 금융위기를 배태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실상을, 미국은 위기 극복을 이끈 지도자들의 생애에 관심을 보인다. 올해 베이징올림픽 개최 등으로 위상을 다시 제고한 중국은 찬란한 과거를 복기하고 있고, 오랜 불황에 사회적 약자들이 스러져가는 일본은 과거의 고전을 다시 들추고 있다. 새해 세계 각국 서점가를 점령한 화제의 책들은 모았다.


■ 일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왼쪽) 게공선(오른쪽)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왼쪽) 게공선(오른쪽)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불티
러시아 불안 통찰서 답 찾기

프롤레타리아 소설 ‘게공선’
부당 현실 맞선 노동자에 위안

일본에서는 새로운 고전 붐이 불고 있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도들>과 자기개발서 <꿈을 이루는 코끼리>, 혈액형 시리즈 등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들이 대부분인 2009년 벽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고전문학 작품 두 권이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대표작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고분샤, 전 5권)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신초샤)이 지난해에만 각각 55만권이나 팔렸다.

이들 작품을 펴낸 출판사들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고전작품 붐은 불안한 현실에 좌절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게공선> 붐을 타고 일본 공산당의 새로운 입당자가 1만명 이상 늘어나는 등 새로운 사회현상을 낳기도 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고전작품 재번역 붐에 불을 지폈다. 1880년 러시아에서 첫 출판된 이 작품은 호색한에다가 탐욕적인 아버지의 살해사건을 둘러싼 배다른 세 형제의 행동을 통해 신과 죽음, 인간의 죄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1957년 이와나미문고에서 초판이 출판됐다.

2006년 9월 고분샤에서 재출간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전체 5권을 통틀어 지난해 12월 총 100만권 판매를 돌파했다. 고마이 미노루 고분샤 문예편집부 편집장은 지난 19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일본에서도 고전작품은 별로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로 팔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애초는 막 은퇴하기 시작한 단카이세대(1947~1949년 출생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해 출판했으나, 의외로 20~30대 여성이 주요 독자로 떠오르면서 붐이 일기 시작했다고 고마이 편집장은 덧붙였다.

130년 전에 쓰여진 고전문학 작품이 일본에서 다시 주목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고마이 편집장은 불안전·불안심리 확산에서 해답을 찾는다. “2~3년 전부터 부모살해, 자식살해 사건이 빈발하면서 일본 사회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또한 역사의 변혁기를 맞이하면서 불안심리도 확대되고 있다. 당시 러시아 사회의 불안을 깊이 파고든 이 작품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불안심리 속에 사는 일본인들이 해답을 찾고 있는 것 같다.” 20~30대 여성들이 주요 독자층으로 떠오른 것도 이들이 가장 크게 불안을 느끼며 사는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929년 세계 대공항 시기에 출간된 소설 <게공선>은 80년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오늘날 일본 사회의 ‘곤궁함’을 읽는 열쇳말로 떠올랐다. 지난 55년간 총 110만권이 팔렸고, 그 절반이 2008년 한해에 팔린 셈이다. 캄차카해 연안 게잡이 어선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인부들의 모습과 이들의 굳센 단결투쟁을 그린 이 작품은 오늘날 파견노동자로 대표되는 워킹푸어(노동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의 열악한 노동조건, 현실과 겹쳐지면서 새롭게 주목받았다. 사시키 쓰토무 담당 편집자는 <게공선> 붐의 배경에 대해 “일본 사회 구조가 ‘격차사회’로 변모해 가면서 파견, 계약직, 아르바이트직 등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격차도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책이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대립구도를 알기 쉽게 그리고 있어, 대중들의 눈길을 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노조의 힘이 결정적으로 약화된 탓에 마구잡이식 해고와 착취구조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파편화된 일본 젊은이들이, 노동자들이 단결해 부당한 현실과 맞서 싸워나가는 80년 전의 프롤레타리아 소설에서 위안과 동경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옥에 갈까”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옛 문체에다 방언도 많이 쓰여 결코 읽기 편한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도 50만권 이상 팔린 데는 유행에 동참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책을 산 사람이 많은 탓도 있다고 신초샤 관계자는 전했다.

일본 공산당은 <게공선> 붐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게공선>을 쓴 프롤레타리아 문학작가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가 이 소설을 발표한 지 4년 뒤인 1933년 일본 ‘특고’(정치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끝에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공산당 입당자가 급증했다. 공산당 입당자는 2007년 말부터 1년 새 1만명 이상 늘었고, 기관지 <적기>(아카하타)의 정기 구독자 수도 크게 증가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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