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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화주의 시대’ 명나라 다시보기

등록 2009-01-23 19:13

명나라, 그 사건들
명나라, 그 사건들
베스트셀러로 본 세계­­|중국
새해를 맞는 지구촌 시민들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 앞에서 그 원인과 대안을 찾으며 마음의 양식을 구하고 있다. 유럽은 금융위기를 배태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실상을, 미국은 위기 극복을 이끈 지도자들의 생애에 관심을 보인다. 올해 베이징올림픽 개최 등으로 위상을 다시 제고한 중국은 찬란한 과거를 복기하고 있고, 오랜 불황에 사회적 약자들이 스러져가는 일본은 과거의 고전을 다시 들추고 있다. 새해 세계 각국 서점가를 점령한 화제의 책들은 모았다.

■ 중국

소설 ‘명나라, 그 사건들’ 계기
‘명조의 황제들’ 등 쏟아져

“올해는 명나라의 해다.” 중국에선 2007년 분출한 명나라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평범한 세관 공무원이 2006년 3월부터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한 역사소설 <명나라, 그 사건들>(明朝那些事)이 지난해 책으로 묶여나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이 명나라 시대로 회귀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다. <명나라, 그 사건들>의 인기는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6부까지 전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전체 판매부수는 300만부를 훌쩍 넘어섰다.

명나라를 무대로 한 소설이 이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국인들에게 명나라는 무능한 황제와 환관의 득세, 농민 반란, 왜구들의 습격으로 점철된 암울한 시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나라, 그 사건들> 속의 명나라는 천하를 다투는 영웅호걸들의 전략과 투쟁이 생동하는 시대다.

지은이의 신비한 행적도 책의 인기에 불을 붙였다. ‘당년명월’(當年明月)이란 아이디의 저자는 5부가 출간될 때까지 본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광저우 세관의 공무원이란 게 알려진 전부였다. 그가 글을 연재한 곳도 인터넷 사이트 ‘톈야’의 ‘술을 끓이며 역사를 논한다’는 구석진 동호회였다. 소박한 출신과 화려한 성공에 놀란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 ‘풀뿌리 문학’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한 무명씨가 자신만의 역사 해석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것은 역사학자들의 판에 박힌 시각에 대한 대중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당년명월에게는 ‘심령역사소설’의 창시자라는 호칭도 생겼다. 역사를 무협지처럼 흥미롭게 묘사하는 그의 작법에 대한 칭찬이다. 그는 책 서문에서 “수많은 역사연구서를 읽었지만, 그 높은 의견과 심오한 문장에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며 “역사란 그 자체로 빛나고 재밌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나라, 그 사건들>이 인기를 얻자 여기저기서 명나라와 관련된 책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정설 명조 16제>, <대명 15가지 의혹>, <명조의 황제들>처럼 제목에 ‘명’자가 들어간 책들이 삽시간에 서점가를 점령했다. 1980년대 나왔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만력 15년>이란 한물간 책까지 다시 서가에 꽂혔다. 명나라 열풍은 텔레비전까지 파고들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과 주요 방송사에서 명나라를 무대로 한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후난위성텔레비전>에선 대형 역사극 ‘대명왕조’를 방영했고, <중국중앙텔레비전>의 유명 교양프로그램 ‘백가강단’은 ‘명 17황제’란 제목의 강의를 내보냈다. 드라마 소재로서 명나라의 부상은 청나라의 쇠퇴를 의미한다. 이전까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방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청나라를 무대로 한 드라마가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런 명나라 열기에서 ‘한족 중심주의’와 ‘중화주의’의 부활을 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중국 사회의 명나라 열기가 달 탐사선 발사, 베이징 올림픽 등 중화민족의 부흥을 선포한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한족이 지배했던 왕조로선 한나라나 당나라 못잖은 거대한 제국을 이뤘다는 점도 그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지난해 중국에선 한족의 전통문화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중화문명의 창시자로서 한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복고적 민족주의가 팽배했다. <품삼국>(品三國)이란 베스트셀러를 쓴 이중톈은 한 신문에 “청나라는 외래민족이 중국을 통치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 그런 요소는 사라졌다. 중국 역사에서 외래민족의 그림자를 지운 게 바로 명나라”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의 명나라 열기는 2005년부터 태동했다. 명나라의 세번째 황제인 영락제 때 이뤄진 ‘정화의 대항해’ 600주년을 맞아 명나라에 대한 재조명이 활기를 띠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만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정화의 대항해는 당시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음을 웅변한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다.

명나라는 이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시기’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백가강단’에서 ‘명 17 황제’를 강의한 마오페이치 교수는 “명나라는 군주제가 최고조에 오르고, 중국의 정치·경제·문화가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라며 “그것은 중국 역사가 성숙해지고 완전해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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