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
〈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
이은희 지음/살림·1만2000원. 완두콩, 현미경, 엑스선 회절 사진, 메뚜기, 성게, 초파리, 대장균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생명의 열쇠를 푸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어쩌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유전의 법칙, 세포, 디엔에이(DNA) 구조, 염색체의 역할 발견과 인슐린의 합성은 이들 발명품의 덕택이자 ‘미물’들의 희생 아래 쌓아 올려졌다. 오스트리아의 샤프고치 주교, 네덜란드 상인 레이우엔훅, 영국 과학자 윌킨스가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 1850년대 샤프고치 주교가 “성스러운 순결을 지켜야 하는” 성직자에게 회색 쥐와 흰색 쥐의 교배를 금지시키지 않았다면, 가톨릭 사제 멘델은 유전법칙의 수수께끼를 풀어준 완두콩에 눈길을 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레이우엔훅이 17세기 혼자 유리세공술을 공부해 렌즈를 만들고 배율을 높인 현미경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우린 코르크에서 세포를 발견한 로버트 훅의 이름 또한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동료에게 찬밥이었던 윌킨스가 디엔에이의 엑스선 회절 사진을 ‘몰래’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디엔에이 구조를 밝혀낸 왓슨과 크릭은 1962년 노벨상을 타지 못했을 수 있다.
과학 교양서 분야 최고의 인기 스타란 수식어와 하리하라(힌두교 창조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가 결합한 상태)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지은이 이은희씨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쇼, 유전의 비밀”로 우리를 안내한다. 생물학사에 얽힌 에피소드, 유전과학 상식을 미국 드라마 <시에스아이>·<로앤오더>·<본즈>로 재치있게 풀어낸 각 장 맨끝의 ‘쉬어 가는 페이지’, 시사 과학상식을 친절하게 설명한 본문 중간중간의 ‘하리하라’S Dictionary’는 책의 감칠맛을 더한다. 읽다보면 어느덧 대학 입시를 위해 형광펜으로 줄치며 달달 외웠던 생물 과목에 대한 ‘괴롭던’ 기억이 떨어져 나간다. 생명의 신비는 거창한 듯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질문들이다. “뱃속 우리 아이는 누굴 닮았을까, 나 아니면 내 남편?” “어떤 이들은 나에게 엄마를, 또다른 이들은 아빠를 닮았다고 할까? 나는 도대체 누구를, 어떻게 닮은 걸까?” 이 흔한 질문에서 출발한 지은이는 디엔에이와 유전자, 염색체 그리고 게놈의 차이 알기에서부터 생명공학의 논란으로까지 끌고간다. 1907년, 1954년은 유전을 둘러싼 윤리 논쟁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미국 인디애나주 주의회는 1907년 정신박약아·창녀·범죄자·알코올 중독자·간질환자·장애 및 기형아 등을 ‘사회 부적격자’ 범주에 넣고, 이들에 대한 강제 불임시술을 합법화했다. 30년대 27개주로 확대된 이 법으로 4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강제 불임시술을 당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았다. 1954년 최초로 설립된 정자은행도 강제 불임시술과 함께 우생학의 어두운 한 면이 만들어낸 비극이자 논쟁거리다. 1993년 개봉된 <가타카>는 유전자의 우열에 따른 ‘우울한’ 미래 계급사회를 극단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단계를 다 밟으면 지은이가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유전자가 약속한 미래’에 대한 논쟁에서 자신의 견해를 갖거나 보강하거나 아니면 새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