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46)
한창훈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
죽기살기로 사는 홀로된 어부와
죽으려고 섬 찾아온 여자 등
삶·죽음·이별·언어의 풍경 가득
‘바다의 작가’ 한창훈(46)씨가 다섯 번째 소설집 <나는 여기가 좋다>(문학동네)를 묶어 냈다. 여덟 단편이 실렸는데, 대부분은 작가의 고향이자 현 거주지인 거문도를 배경으로 삼은 것들이다.
“난 이제 섬을 떠날 거요. 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요.”
표제작 <나는 여기가 좋다>에서 주인공의 아내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 오십줄에 접어든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의 근거이자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어선을 처분하고 하루아침에 선주도 선장도 아닌, “그냥 섬사람”이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배 잃은 섬 중년”은 그러나 육지로 나가자는 아내의 제안을 아무런 대책 없이 거부하고 있는 참이다. 싫어하는 아내를 배에 태우고 마지막 출어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조타실 창문을 때리는 물보라는 그의 착잡한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이 사내는 <아버지와 아들>에도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의 주인공은 아버지 ‘박’과 아들 ‘용이’. <나는 여기가 좋다>의 부부를 갈라 놓은 갈등이 이들 부자 역시 맞세운다. 아버지는 “아들이 섬에서 사는 게 싫”은데, 아들은 섬에서 “어선을 부리고 싶다.” 십이 마력 경운기 엔진을 단, 섬을 통틀어서도 가장 작은 아버지의 거룻배를 없애고 번듯한 새 배를 사자는 아들의 제안을 놓고 부자가 나누는 대화에 두 사람의 갈등이 압축되어 있다.
“배 있으믄 너가 뱃일을 하게 돼서 안 돼.”
“난 뱃일 할라요. 나중에는 양식장도 할 거고.”
여기서 용이의 외삼촌으로 나오는 인물이 바로 <나는 여기가 좋다>의 주인공 사내다. 그사이 아내는 공언했던 대로 육지로 떠나고, 그는 배도 가족도 없는 채로 혼자만 섬에 남아 있다. 아내가 떠난 직후의 상황은 또 다른 작품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 그려져 있다. 아내가 만들어 놓고 간 김치와 밑반찬을 복수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봉투에 쏟아 버린 그의 앞에 죽을 결심을 하고 섬을 찾은 중년 여성이 나타난다. “여기가 공동묘지라도 된다는 거요? 나는 죽자사자 살아가는 곳이 당신들한테는 고작 죽을 곳이요?” 자신을 배에 태워 공해상까지 데려다 주면 그곳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죽겠노라는 여자에게 그는 소리친다. 그러나 배를 잃은 뒤에 그가 섬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자사자” 살아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부자 사이의 갈등이 아들 쪽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결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할 수 있다. 외삼촌이 포기한 ‘어선 부리기’가 그 조카에게서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문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주관적 의지 여하가 아니지 않겠는가. 연작 성격의 이 작품들과 함께,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된 직후 섬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소동을 “사랑해서 잤당게요”(다방 종업원)와 “성매매로 잔 거여”(파출소장) 사이의 대결로 포착한 <올 라인 네코>, 젊은 시절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동무의 제사에 참례하는 노인의 쓸쓸한 저녁을 다룬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섬 노인들의 제주 여정을 익살스런 어조로 보고하는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섬살이의 다채로운 속살을 보여준다. 섬 바깥으로 무대를 옮긴 <밤눈>과 <가장 가벼운 생>은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생의 풍경을 서정적 어조로 그리는 가운데, 나란히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로 말이었소. 그 사람이 하던 말이 그렇게나 좋았단 말이요.”(<밤눈>) “그는 어쩌면 어떤 말을 만들어내려고, 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병이 났을지도 몰랐다.”(<가장 가벼운 생>) 여기서의 ‘말’을 ‘문학’으로 바꾸고, 표제작 등에서 그토록 문제가 되었던 바다를 문학의 상징으로 이해해 보자. 고향 거문도에 틀어박혀 어민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문학이라는 애물단지를 끝내 놓지 못하는 작가 한창훈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자료사진
죽기살기로 사는 홀로된 어부와
죽으려고 섬 찾아온 여자 등
삶·죽음·이별·언어의 풍경 가득
〈나는 여기가 좋다〉
여기서 용이의 외삼촌으로 나오는 인물이 바로 <나는 여기가 좋다>의 주인공 사내다. 그사이 아내는 공언했던 대로 육지로 떠나고, 그는 배도 가족도 없는 채로 혼자만 섬에 남아 있다. 아내가 떠난 직후의 상황은 또 다른 작품 <섬에서 자전거 타기>에 그려져 있다. 아내가 만들어 놓고 간 김치와 밑반찬을 복수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봉투에 쏟아 버린 그의 앞에 죽을 결심을 하고 섬을 찾은 중년 여성이 나타난다. “여기가 공동묘지라도 된다는 거요? 나는 죽자사자 살아가는 곳이 당신들한테는 고작 죽을 곳이요?” 자신을 배에 태워 공해상까지 데려다 주면 그곳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죽겠노라는 여자에게 그는 소리친다. 그러나 배를 잃은 뒤에 그가 섬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자사자” 살아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부자 사이의 갈등이 아들 쪽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결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할 수 있다. 외삼촌이 포기한 ‘어선 부리기’가 그 조카에게서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문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주관적 의지 여하가 아니지 않겠는가. 연작 성격의 이 작품들과 함께,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된 직후 섬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소동을 “사랑해서 잤당게요”(다방 종업원)와 “성매매로 잔 거여”(파출소장) 사이의 대결로 포착한 <올 라인 네코>, 젊은 시절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동무의 제사에 참례하는 노인의 쓸쓸한 저녁을 다룬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섬 노인들의 제주 여정을 익살스런 어조로 보고하는 <삼도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섬살이의 다채로운 속살을 보여준다. 섬 바깥으로 무대를 옮긴 <밤눈>과 <가장 가벼운 생>은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생의 풍경을 서정적 어조로 그리는 가운데, 나란히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로 말이었소. 그 사람이 하던 말이 그렇게나 좋았단 말이요.”(<밤눈>) “그는 어쩌면 어떤 말을 만들어내려고, 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병이 났을지도 몰랐다.”(<가장 가벼운 생>) 여기서의 ‘말’을 ‘문학’으로 바꾸고, 표제작 등에서 그토록 문제가 되었던 바다를 문학의 상징으로 이해해 보자. 고향 거문도에 틀어박혀 어민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문학이라는 애물단지를 끝내 놓지 못하는 작가 한창훈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