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이되는 말, 희망이 되는 말’ 낸 최광기씨
“멀지 않아 두 눈 모두 멀게 되는 상황이 되면 난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지? … 그렇다. 조급할 것 하나도 없다. 내겐 목소리가 있지 않은가. 2004년 봄 광화문 거리를 수놓은 그 촛불들을 뒤흔들었던 목소리. 내 열정, 내 광기, 내 넋과 혼이 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 나는 변함없이 최광기다.”
탄핵반대 촛불집회의 10만명 청중을 울리고 웃겨 ‘국민 사회자’란 별명까지 얻은 최광기(37)씨가 ‘거리 사회자 10여년’의 경험담을 모아 낸 <밥이 되는 말, 희망이 되는 말>(웅진 펴냄)에서 그는 뜻밖에 자신의 장애 사실을 밝혔다. 지난해 가을 ‘3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1997년부터 악화돼 지금은 오른쪽 눈이 거의 실명한 심각한 녹내장이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쪽 눈의 시력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그는 “두 아이가 자랄 때까지, 60살까지만 볼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라며 “그래도 세상을 보는 데엔 한쪽 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오히려 씩씩하게 말한다.
“어릴 적부터 사회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93년 우연하게 도시빈민문화제 사회를 본 것을 계기로, 민주노총 창립 전야제, 탄핵무효 촛불집회 등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렁차고 시원시원한 말솜씨 덕분에 거리 사회자로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는 3·8여성대회, 안티미스코리아대회, 인권콘서트, 노래판 굿 꽃다지 공연은 물론 크고 작은 노동현장과 거리집회들에서 활약했다. 요즘엔 “어색하지만” 방송도 탄다.
책에 썼듯이 거리 사회자엔 여러 뒷얘기도 많다. 만삭의 몸으로 앰뷸런스를 대기시킨 채 사회를 봤던 일, 무대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는데도 벌떡 일어나 7시간 동안 사회를 다 본 뒤 응급실로 실려간 일, 자신보다 더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일 등등…. 그는 “그 때 일들을 떠올리면 내게 어떤 ‘신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웃는다.
대학 사회학과 출신인 그의 ‘사회’ 철학은 “나는 소외된 이들의 마이크” 쯤 된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단 1초라도 진지하게 귀기울이지 않는 장애인·성적소수자·양심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도 한 달에 10번 정도는 크고 작은 전국의 행사에 사회를 보러 다닌다.
말 잘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 수많은 청중 마음에 특별히 파고드는 그만의 말솜씨 비결은 무엇일까. 청중 앞에서 말 잘하기가 부러운 사람들의 궁금증을 물어봤다. “우리시대 어머니들의 수다에서 배웠죠. 대학생 시절인 1991년부터 꼬박 10년 동안 상계동 철거민지역 어머니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는데, 10년을 함께 수다 떨며 지내다 보니까 가슴에 닿는 솔직한 말들이 입에 밴 것 같아요.” 국민 사회자 말솜씨의 원형질은 ‘아줌마 수다’였다!
그는 “돌발 상황을 즐겨라, 수많은 청중 앞에서는 중간쯤을 바라보라, 쉽고 귀에 잘 들리는 말로 말하라 등등 말 잘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사람들 얘기에 먼저 귀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고, 솔직해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그는 23일 밤 7시 서울 명동 우림펑키하우스(유네스코회관 3층)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해 시와 노래, 유쾌한 말이 있는 콘서트(02-717-9247)를 연다. “비장의 야심작”인 최광기와 떴다밴드, 그리고 말 잘하고 노래 잘하는 권해효, 안치환, 홍석천 등이 함께 나온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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