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의 과학, 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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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는 8평짜리 방에 15년 동안 감금당하면서 자신의 팔뚝에 상처를 내어 세월의 흐름을 새겨넣는다.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단테스는 이프섬 감옥에 갇히자 세월을 놓치지 않으려고 벽에 날짜를 새겨 넣기 시작한다. 다행히 오대수와 단테스에게는 텔레비전과 간수의 식사라는 ‘시계’가 있었다.
1972년 프랑스 지질학자이자 수면연구가인 미셸 시르프는 지하 30여m의 미드나잇 동굴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는 과학장비, 가구, 나일론텐트, 냉장고, 1갤론 물통 780개가 준비돼 있었다. 시르프에게 없는 것은 단 하나, 시계였다.
시르프가 6개월이란 무모한 시간을 동굴 속에서 지낸 이유는 우리 몸 속에 있는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우리 몸속에 ‘하루주기 리듬’이라는 시계가 존재함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시신경 교차상핵의 뉴런 수천개가 서로 ‘동조’하며 자발적으로 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우리 몸을 동조 상태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이런 동조에 혼란이 오면 수면의 주기가 깨진다. 이런 비동조화는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겪는 가정불화와 건강 악화의 원인이다. 인도의 보팔 화학공장, 옛소련의 체르노빌과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모두 밤 12시에서 오전 4시 사이에 일어난 까닭은 교란된 동조 때문이다.
태양계 행성 궤도 돌고
반딧불은 한꺼번에 깜빡
친구는 월경주기 닮아가
말레이시아 망그로브 숲의 반딧불이 수천마리가 한꺼번에 반짝이는 것, 초전도체 안의 수많은 원자들이 ‘함께 합창하듯’ 움직이는 것, 태양계의 행성들이 서로 중력으로 당기며 궤도를 도는 것, 심장의 박동 조절 세포 수천개가 동시에 방전하는 것에는 일관된 무엇이 있다. 동시성(싱크) 곧 동조다. 동조는 싱크로나이즈드 선수들의 동작처럼 지속될 때 장관을 이룬다.
미국 코넬대 응용수학과 교수로 카오스와 복잡계 이론가인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쓴 <동시성의 과학, 싱크>(김영사 펴냄)는 존 글릭의 <카오스>, 알버트 라즐로 바바라시의 <링크>에 이어 복잡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과학서로 평가된다. 미국 과학잡지 <디스커버 매거진>이 ‘2003년 올해의 과학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스트로가츠는 낯설지 않다. 그는 1998년 6월 동료 던컨 와츠와 함께 <네이처>에 ‘좁은 세상 네트워크’라는 수학적 모형을 발표해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모든 네트워크에는 지름길(노드)이 있어 생물의 신경망나 컴퓨터, 송전망 심지어 인간사회처럼 아무리 복잡한 네트워크라도 아주 짧은 연쇄를 두고 연결된다는 이론이었다. 무질서→질서 과정 밝혀
복잡계 새 지평 열어
일상의 비유로 쉽게 설명 스트로가츠는 이번에는 <…싱크>에서 무질서하게 보이는, 그러나 질서 정연한 우주의 모든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찾는 여행에 나선다. 망그로브 숲의 반딧불이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느 순간 동시에 깜박거린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자매나 룸메이트, 친한 친구, 직장의 여성 동료들은 월경 주기가 닮아간다. 인간 심장의 수많은 박동 세포들은 지휘자도 없이 한치의 틀림 없이 수십년 동안 동시 방전을 반복한다. 스트로가츠는 이런 무질서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배하는 동조라는 현상을 발견해냈다. 그의 사유는 무생물로 넘어간다. 1965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헨스는 나란히 놓인 두개의 시계의 추가 어느 순간 동조해 한 추가 ‘짹’하면 다른 추가 ‘깍’하는 것을 발견했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서도 자발적 동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양자현상, 레이저, 송전망의 통합, 라디오, 휴대전화, 위성위치 확인시스템(GPS) 등에서 우주에까지 이른 스트로가츠의 동조 여행은 2000년 런던 밀레니엄 다리 실패 사건과 1997년 티비만화 <포켓몬> 시청 어린이 수백명 졸도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인간의 의식도 동조 현상으로 해석한다. 이쯤 되면 “동조는 아름답고 신기하고 심원한 감동”을 주고, “느낌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싱크>가 460여쪽에 이르는 부담스러울 두께에 생경한 과학 용어로 복잡계라는 생소한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한숨에 읽히는 비결은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수학의 생명력을 전달하기 위해 방정식을 일체 쓰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끌어온 비유와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 과학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생생한 일화에 독자는 쉽게 동조에 이른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반딧불은 한꺼번에 깜빡
친구는 월경주기 닮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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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넬대 응용수학과 교수로 카오스와 복잡계 이론가인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쓴 <동시성의 과학, 싱크>(김영사 펴냄)는 존 글릭의 <카오스>, 알버트 라즐로 바바라시의 <링크>에 이어 복잡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과학서로 평가된다. 미국 과학잡지 <디스커버 매거진>이 ‘2003년 올해의 과학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스트로가츠는 낯설지 않다. 그는 1998년 6월 동료 던컨 와츠와 함께 <네이처>에 ‘좁은 세상 네트워크’라는 수학적 모형을 발표해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모든 네트워크에는 지름길(노드)이 있어 생물의 신경망나 컴퓨터, 송전망 심지어 인간사회처럼 아무리 복잡한 네트워크라도 아주 짧은 연쇄를 두고 연결된다는 이론이었다. 무질서→질서 과정 밝혀
복잡계 새 지평 열어
일상의 비유로 쉽게 설명 스트로가츠는 이번에는 <…싱크>에서 무질서하게 보이는, 그러나 질서 정연한 우주의 모든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찾는 여행에 나선다. 망그로브 숲의 반딧불이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느 순간 동시에 깜박거린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자매나 룸메이트, 친한 친구, 직장의 여성 동료들은 월경 주기가 닮아간다. 인간 심장의 수많은 박동 세포들은 지휘자도 없이 한치의 틀림 없이 수십년 동안 동시 방전을 반복한다. 스트로가츠는 이런 무질서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배하는 동조라는 현상을 발견해냈다. 그의 사유는 무생물로 넘어간다. 1965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헨스는 나란히 놓인 두개의 시계의 추가 어느 순간 동조해 한 추가 ‘짹’하면 다른 추가 ‘깍’하는 것을 발견했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서도 자발적 동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양자현상, 레이저, 송전망의 통합, 라디오, 휴대전화, 위성위치 확인시스템(GPS) 등에서 우주에까지 이른 스트로가츠의 동조 여행은 2000년 런던 밀레니엄 다리 실패 사건과 1997년 티비만화 <포켓몬> 시청 어린이 수백명 졸도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인간의 의식도 동조 현상으로 해석한다. 이쯤 되면 “동조는 아름답고 신기하고 심원한 감동”을 주고, “느낌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싱크>가 460여쪽에 이르는 부담스러울 두께에 생경한 과학 용어로 복잡계라는 생소한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한숨에 읽히는 비결은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수학의 생명력을 전달하기 위해 방정식을 일체 쓰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끌어온 비유와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 과학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생생한 일화에 독자는 쉽게 동조에 이른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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