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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잔혹한 역사 속에서도 삶은 꽃핀단다

등록 2009-02-27 18:16수정 2009-02-27 18:24

1940년 열두 살 동규 손연자 글·김산호 그림/계수나무·1만1000원
1940년 열두 살 동규 손연자 글·김산호 그림/계수나무·1만1000원
열두살 아이 눈으로 바라본 일제강점기 사회상
다양한 인물군상 통해 역사소설 읽는 의미 찾게 도와




1940년 열두 살 동규
손연자 글·김산호 그림/계수나무·1만1000원

아이들을 꾸짖고 교훈을 주자는 전근대적인 발상이 아니라면, 실제 역사에 가까울수록 잔인해지는 어린이 역사소설을 굳이 읽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1940년 열두 살 동규>에는 일제강점기의 사회상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서울 남산 밑 한의원에 살던 동규네 가족에게도 밀어닥친다. 도쿄에 유학갔다던 동규 아버지가 실은 독립운동가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가족은 흩어진다. 할머니는 죽고, 할아버지는 앞니가 뽑히는 고문을 당하고 정신을 잃어버린다. 만주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서는 일본군의 학살현장에 가감없이 맞닥뜨리기도 한다. 열두 살 동규가 간도에서 죽은 아기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아낙과 마주치거나 아기들의 무덤에 삽을 뜨는 장면은 잔혹동화나 다름없어 보인다.

지은이는 <마사코의 질문>을 쓴 손연자 작가다. 생체실험, 관동대지진, 정신대 문제 같은 심각한 주제를 다룬 동화집 <마사코의 질문> 이후 작가가 십 년 만에 낸 어린이 역사소설이다. 동화라는 그릇에 진중한 역사의 무게를 넘치도록 얹은 <…열두 살 동규> 또한 주인공을 역사의 한가운데로 내모는 빠른 줄거리에 숨이 가빠진다.

그렇지만 격랑 속에서도 어른들은 소년 동규의 유년의 뜨락을 굳게 지킨다. 소설 초반 등장하는 한의원이 가장 따사로운 공간이다. 한약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보꾹’(지붕을 뜻하는 옛말) 아래에서 ‘늘품’(앞으로 좋게 발전할 품성) 갖추고 ‘앙세게’(몸은 약해보여도 다부지게) 자라나던 동규의 일상은 할아버지가 꼿꼿이 지킨 덕에 늘 든든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그에게 택견을 가르치던 숯장수 아저씨가 국경을 건너 아버지의 무대인 만주로 데려다준다.

시대 때문에 급하게 철이 들어도 동규는 유년의 심성을 잃지 않고, 일본인 친구와도 어깨를 걸고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운다. 작가는 가파른 일본말과 정다운 우리 옛말을 섞어가면서, 비열하고 잔인한 사람들 사이에 뜻밖의 인간미와 우정을 심어두면서, 비정한 역사를 읽는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입김을 쏘인다. 그림의 결도 비슷하다. 창씨개명한 손자의 회초리를 치는 엄격한 할아버지 그림과 아들의 볼을 씻어주는 아버지의 푸근한 모습들이 교차하면서 자칫 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역사소설에 다양한 인간군상의 매력을 심는다.


<무궁화와 모젤 권총>을 쓴 일본작가 시카다 신은 전쟁아동문학을 쓰는 이유는 “전쟁 속의 주인공, 그것이 너라는 자각을 통해 너는 누구인지 발견하기 위해서”라고 한 일이 있다. 어린이들이 역사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들이 따뜻한 에피소드만큼이나 잔혹한 역사도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열두 살 동규>는 역사를 헤엄치는 다양한 인물들 속에서 어린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찾도록 유도한다.

남은주 기자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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