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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신열 가신 자리, 밤의 입구에서 삶을 맛보오

등록 2009-03-05 18:43수정 2009-03-05 19:14

황동규(71) 시인
황동규(71) 시인
황동규 새 시집 ‘겨울밤 0시5분’
“무병 맛이 아니라 앓다가 낫는 맛?”
죽음과 소멸의 예감 때문에
더 생생해지는 삶의 감각 노래
황동규(71)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 <겨울밤 0시 5분>이 현대문학에서 나왔다.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초기의 몇 권을 제하고는 지난 시집 <꽃의 고요>(2006)까지 대부분의 시집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냈던, 이른바 ‘문지 사단’의 대표 시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현대문학 판 시집을 ‘50년 만의 귀향’이라 할 수도 있겠다.

“황혼도 저묾도 어스름도 아닌/ 발밑까지 캄캄, 그게 오기 직전,”(<어느 초밤 화성시 궁평항> 부분)

인용한 시의 시간대는 이른 밤(‘초밤’)을 가리키지만 그 느낌은 시집 제목에 쓰인 ‘겨울밤 0시 5분’과 통하는 것 같다. 그 시간대를, 가령 지난 시집의 “황혼이 어둠에 막 몸 내주기 전 어느 일순”(<슈베르트를 깨뜨리다>)과 비교해 보자. 어둠이 한결 짙어지지 않았겠는가. 두 시집의 시간대 사이에 그런 정도의 낙차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루의 시간대는 자주 한 생애의 단계에 대한 비유로 동원되곤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면 “발밑까지 캄캄, 그게 오기 직전” 또는 ‘겨울밤 0시 5분’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지 않겠는가. 죽음, 그러니까 소멸. 황혼에서 칠흑으로 나아간 시간대만큼, 이번 시집은 지난 시집에 비해 죽음과 소멸 쪽으로 한층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죽음을 상대로 한 황동규 시인의 대결 혹은 대화의 역사는 생각보다 유구하다. 그것은 죽음과의 전면전이라고나 할 연작시집 <풍장>(1995)보다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찌 보면 죽음은 시인에게 가장 풍성한 시적 결실을 보장해 준 셈이다.

그의 ‘죽음 시’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풍요롭게 생산되어 온 까닭은 죽음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단일하고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죽음은 세속적 절망의 근거도 아니고 종교적 초월의 대상도 아니다. 그의 여러 시가 때로 절망과 초월 쪽으로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해도, 시인은 궁극적으로 그 어느 쪽 손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는 않는다. 절묘한 균형감각이라 할 만하다.


<겨울밤 0시 5분>
<겨울밤 0시 5분>
“누군가 떠간 데스마스크 거푸집이 남겨져 있다./(…)// 이제 철렁 세상이 굳는/ 기이한 느낌을 만끽할 것이다.”(<무(無)추억을 향하여> 부분)

“너도 알고 있는가,/ 삶의 크기가 졸아들수록 농도가 짙어가는/ 땀 냄새 침 냄새 눈물 냄새 속에서/ 시리고 황홀하고 지렸던 몸의 맛을?”(<몸의 맛> 부분)

황동규 시인의 시들에서 미구에 닥쳐올 죽음과 소멸이 수반하는 적막, 그리고 그런 분명한 예감에도 불구하고-아니 오히려 그런 예감 때문에 더욱더-진해지는 삶의 감각이 공존하는 풍경은 경이롭다. “아무것도 없다!”(<허공에 한 덩이 태양>)는 탄식으로 가라앉는가 하면, “그러나 계속 진해만 가는/ 삶의 끄트머리”(<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갈 준비 돼 있다>)를 붙들고 매달리는 것이 그의 ‘죽음 시’들이다. 절망도 초월도 아니며, 차안과 피안, 세속과 탈속, 삶과 죽음을 자재로이 넘나드는 노래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표제시의 마지막 행은 그런 의미에서 복합적·이중적인 울림을 준다. 이 문장의 주어인 ‘막차’는 사태의 종결을 가리키며 닫혀 있지만, ‘올 것이다’라는 서술부는 그럼에도 모종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닫힘을 향한 열림’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겠다. 그것을 ‘죽음과 소멸의 예감 때문에 오히려 더욱 생생해지는 삶의 감각’이라고 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의 맛>과 더불어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인 쾌락주의를 표방한 <삶의 맛>은 ‘죽음 속의 삶’을 이렇게 적극 예찬한다. 시집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신열 가신 자리에 확 지펴지는 공복감, 이 환한 살아있음!/(…)/ 이 세상 뜰 때/ 제일로 잊지 말고 골라잡고 갈 삶의 맛은/ 무병(無病) 맛이 아니라 앓다가 낫는 맛?”(<삶의 맛> 부분)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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