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한시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음이 커져요

등록 2009-03-13 19:36

한시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음이 커져요
한시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음이 커져요




〈처음 만나는 한시〉
선현경 글·그림, 정민 감수/휴머니스트·1만원

김부식 ‘영춘’ 황진이 ‘영반월’…
독음으로 읊는 한시 호기심 손짓

할머니 옛얘기마냥 스며든 세상사
어린이들 마음자락 저절로 쑥쑥

오늘의 눈으로 보면 한자문화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옛날 어린이들은 어떻게 뜻을 표현하고 세상을 배웠을까?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는 천자문을 배우기 싫어하는 꼬마의 항변을 전한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天’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정민 <한시미학산책>)

한시는 유장하지만 경계를 정함이 없는 세계다. 김시습은 세 살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라고 노래했고, 허난설헌은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다고 한다. 한자를 자유롭게 휘둘러 함축적인 시어로 구사한 신동이 아니라 쳐도 시의 세계에서는 어른과 어린이가 평등한 법. 한시에서도 문자에 구애받지 않는 어린이가 동심의 직관을 자유롭게 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시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음이 커져요
한시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음이 커져요

<처음 만나는 한시>는 한자의 벽을 뛰어넘어 어린이들에게 한시의 서정과 재미를 건네주려는 책이다. 초등학생인 주인공 은서는 방학 동안 증조할머니에게 한시를 배운다. 할머니는 은서에게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우리 음대로 읽어내리면서 시 전체의 뜻을 일러줄 뿐이다. 은서는 첫 한시로 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었다고 하는 ‘영춘’을 배운다. 버들 류(柳)자를 몰라도 “류색사사록 도화점점홍”(버들잎은 실마다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다)이라고 따라 읽다 호기심과 재미를 붙이기를 바라는 마음이겠다. 어른들에게 한자 없이 독음만 읽는 한시는 낯설지만, 주인공은 “마법 주문 같은 소리”를 읊다보면 그것이 노래가 되고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운율을 타고 서정으로 간다.

〈처음 만나는 한시〉
〈처음 만나는 한시〉
이때 어린이가 만나는 한시의 세계는 현대판 ‘아동물’과는 사뭇 다르다. 황진이의 절창 ‘영반월’이나 ‘쌍화점’의 일부라는 ‘사룡’ 등도 들려주면서 시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세상이나 가려진 이야기도 노래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어린이들이 시를 통해 은밀하고 우습고 황당한 세상일을 서슴없이 배우는 양을 보니 한시교육은 실은 감정의 조기교육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한시들은 한학자이면서 <한시미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지은 한양대 정민 교수가 엮고 번역한 것이다. 선현경 작가는 자신의 딸을 모델 삼아 독자 삼아 이 책을 쓰고 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은서는 물론이고, 증조할머니, 책에 나오는 고양이 세 마리도 모두 실제 가족이라고 한다. 이들을 만화 같은 필치와 수채화 기법으로 자상하고 따뜻하게 그렸다. 딸에게 일일이 한시를 들려주면서 책말미에는 주인공 어린이에게 스스로 시를 짓는 ‘마음의 가방’을 챙겨주는 작가는 혹시 두보의 ‘해민’을 읽은 걸까? “심성을 도야하는 데는 다른 것이 없다. 오직 시를 짓고 스스로 읊조려라.”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