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우리는 프레르 광장까지 니엘 가를 따라갔다. 밤이 되었고 벌써 겨울이 오고 있었지만 공기는 따뜻했다. 프레르 광장에 이르자 우리는 오르탕시아의 테라스에 앉았다. 그곳엔 ‘옛날 식으로’ 홈이 파인 의자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위트는 그 카페를 좋아했다.” 공지영씨는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앞부분의 밤거리 묘사를 떠올렸다. ‘한겨레, 책을 말하다’ 행사장인 홍대 앞 카페에 이르는 길이 모디아노 소설의 분위기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봄밤의 카페 테라스는 쾌적하게 따뜻했다. 난로 덕분이었다. 아니, 저녁을 먹으면서 곁들인 와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씨의 신작 산문집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읽은 <한겨레> 독자들과 작가의 만남은 17일 저녁에 있었다. <한겨레> 인터넷 홈페이지의 ‘하니누리’ 코너에 사연을 올린 독자들 중 서른 쌍이 초청되었다. “저라는 사람이 ‘한 심각’ 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볍고 사소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저로서는 일종의 모험이었죠. 신문에 연재를 하면서 거꾸로 가벼워지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같아요.”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경쾌한 어조로 들려주는 가운데 삶과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특히 그동안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소설로 다루어 온 작가가 유머를 적극 구사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공지영씨는 이날 “18년 만에 다시 신을 만나게 된 것도 신이 내게 구사한 아름다운 유머 때문이었다”며 “유머는 선함의 매우 높은 경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토록 실없고 우스운 이야기들에서 독자들이 위안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 결과를 글에서 솔직하게 털어놓기 때문이 아닐까. “글을 쓸 때나 살면서나 가장 힘든 건 ‘내가 정말 무얼 원하고 있나’를 아는 거예요.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게 제일 힘든 거죠.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때론 자신이 싫어질 정도로 적나라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정직한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문제 해결이 쉬워져요.” 진행자(<한겨레> 문학전문기자 ‘최아무개’)와 작가 사이의 대담과 작가의 작품 낭독에 이어 행사에 참석한 독자들이 작가에게 궁금한 것을 직접 물었다.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데리고 사는 싱글맘으로서의 삶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아이들이 나한테는 무거운 짐이지만 그것이 결국은 가벼운 깃털이 되어서 나를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한다”고 답했다. “부양해야 할 아이들이 없었다면 7년의 공백을 거친 뒤에 악착같이 다시 글을 쓰려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무엇보다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며 문고판 세계명작을 추천했다. 그는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경험을 먼저 한 뒤에 소설에 도전해 보라”고 조언했다. 아쉬움 속에 두 시간에 걸친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각자 가지고 온 책에 작가의 사인을 받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 시간이 제법 걸렸는데도 ‘친절한 지영씨’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밝은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여러분이 사 주시는 책 한 권 한 권이 다 내 밥줄”이라던 그의 말이 빈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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