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플로렌스 포크 지음·최정인 옮김/푸른숲·1만3000원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2003)에서 여주인공의 동생이자 여성학자인 조는 ‘성공한 독신여성’에 대한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는다. “언니는 밤마다 독수공방하죠. 중년 남자들은 또래 여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그 결과 나이든 여자들은 일에만 몰두해서 더 큰 성공을 해요. 남자들은 동년배의 성공한 여자를 더욱 위협적으로 보고. 한마디로 독신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엿먹은 그룹이라구요.” 언뜻 그럴싸한 이 논리에는 오랜 선입견이 깔려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은 결핍된 존재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비단 남성이나 남성 중심 사회만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연이나 이혼을 앞둔 여성일수록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크게 느낀다고 한다. 여성 스스로가 혼자 있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의 이혼 뒤 정신적 홀로서기의 지난한 투쟁을 하면서 심리치료사가 된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상담 사례를 통해 ‘혼자’라는 단어 앞에 선 여성의 불안심리와 극복방법을 탐구했다. 지은이는 심리학자 앤서니 스토의 이론을 빌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상반된 욕구, 곧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충동과 고독을 통해 자기 본연으로 돌아가려는 충동”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서적 이유든, 성공을 위해서든 우리는 원만한 관계맺기의 중요성과 기술만 배웠지, 혼자 있는 능력에 대한 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자연스레 혼자 있음은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 곧 고립이나 소외로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고독’이다. 흔히 ‘외로움’ ‘쓸쓸함’ 등의 뉘앙스가 따라다니는 고독을 지은이는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에 속하는 공간”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혼자 있는 것이 하나의 물리적 상태라면 고독은 이 상태가 이를 수 있는 가장 충만한 정신성이다. “고독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내 안의 공간을 확보하도록 도와준다. 내면의 빈 삶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을 계발함에 따라 자기만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은이도 인정하듯이 “고독 속에 머무는 것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지금 사랑하던 이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고독을 즐겨라’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만 배가시킬 일이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들어왔던 ‘어떠어떠해야 한다’라는 남의 시선이 내 안의 ‘자기’(self)를 지워버렸듯이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무턱대고 부정하는 것 역시 자기치유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 지은이는 “무엇보다도 당신의 이야기가 자연의 리듬에 따라 드러나도록 내버려두어라”라고 조언한다. 상실의 고통이나 외로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자기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조언조차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책의 제목처럼 지금 당장 대형미술관에 가보기를. 미술관에서 혼자 작품을 감상하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용기의 첫 단추를 어렵게 않게 끼울 수 있을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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